[인문사회]‘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사상의 자유는 없다

  • 입력 2004년 6월 11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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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로베르 플라실리에르 지음 심현정 옮김/464쪽 1만7000원 우물이 있는 집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은 집안에 행사가 있거나 도시에 축제가 있을 때 ‘향연’을 즐겼다. ‘마시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향연(Symposion)’이란 먼저 식사를 통해 허기를 채운 뒤 술을 마시며 대화, 두뇌게임, 음악 감상, 무용 관람 등의 여흥을 즐기는 잔치였다. 당시의 ‘향연’에 대해 철학자인 플라톤과 작가인 크세노폰이 글을 남겼다.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아가톤의 집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데모스, 에릭시마코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등이 초대를 받아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 대부분은 전날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이날 모임에서는 술에 취하는 대신 그냥 술 마시는 즐거움을 느끼자”는 제안에 모두 찬성했다. 이들은 식사를 한 뒤 연주자들도 내보내고 ‘사랑’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한편 크세노폰의 ‘향연’은 즐거운 놀이를 중심으로 묘사했다. 아테네 제전 중 열린 경마시합 뒤 칼리아스의 집에 초대된 아우톨리쿠스, 소크라테스, 크리토불로스, 헤르모게네스 등은 저녁 식사 뒤에 연주와 무용을 보며 서로 감상을 이야기했다. 함께 게임도 했고 소크라테스는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가 자신들도 사랑을 나누겠다며 연인 또는 아내에게로 달려가면서 ‘향연’은 끝이 났다.

저자는 이 두 종류의 ‘향연’ 중 크세노폰의 ‘향연’이 당시 일반적인 ‘향연’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평가한다. 당시의 ‘향연’은 플라톤이 전해주듯이 논리적인 토론을 하는 자리라기보다는 크세노폰의 이야기처럼 술 마시며 예술과 놀이를 즐기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과장된 환상들을 깨고 실제로 존재했던 이 시대의 모습을 그려 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어떤 가치보다도 도덕을 중시하며 인간 이성의 힘을 신뢰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시대는 기원전 450년경부터 기원전 350년까지 약 100년간의 아테네다. ‘지상의 제우스’라 불리던 페리클레스가 강력한 아테네 제국을 건설했던 시기였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아테네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정이었지만 사실상 페리클레스의 전제정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자는 “극소수의 남자들에게만 참정권이 인정된 민주주의는 오히려 귀족주의와 비슷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세속 권력과 종교의 구분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이 시대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거의 없었다. 아테네는 당시 모든 그리스의 도시 중 가장 자유로운 도시였지만 실제로는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몰인정하며 호전적인 도시였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이용해 전쟁 장례 직업 결혼 가정 주거 교육 위생 축제 연극 등 고대 그리스에 관한 거의 모든 일상사를 이야기하며 그 시대의 실상을 복원해낸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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