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호기/‘보수-중도-진보’의 공존

  • 입력 2004년 5월 31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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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시작됐다. 17대 국회 출범이 갖는 중요한 의미의 하나는 우리 정치권에서 보수-중도-진보의 정치적 실험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이념 문제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주 연세대 특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와 진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고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탈(脫)이념 사회로 나아가는데 우리 사회에선 이념의 ‘뒤늦은 개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17대국회 이념의 정치적 실험▼

그것이 뒤늦었다 해도 바람직한 이념구도의 정립은 중요하다. 주요 사회 이슈는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여전히 서로 다른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탈이념의 구도라는 것도 기실 이념과 탈이념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지 이념이 무용(無用)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설 것을 강조한 서유럽 ‘제3의 길’도 사회민주주의를 갱신하자는 것이지 폐기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현대사에서 제대로 된 이념구도를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6·25전쟁 이후 반공이 규율화되고 내면화된 상황 아래에서 보수가 정치사회의 주류를 형성했으며 진보라 해도 자유주의 내지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은 강한 보수와 약한 중도의 ‘2분 구도’였으며 이 구도는 1997년 대선까지 그대로 유지돼 왔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기준도 서구와는 사뭇 달랐다. 서구의 경우 보수와 진보는 자유와 평등 가운데 어느 것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가에 따라 구분돼 왔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기준보다 한미관계와 대북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왔다.

우리의 이념구도에서 흥미로운 것은 중도다. 서구의 경우 중도가 설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한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중도가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존재해 왔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특수한 조건에 기인한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전까지 정치권에서는 진보가 허용되지 않아 일부 진보세력이 중도를 표방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의 중도는 보수적 중도에서 진보적 중도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넓고, 그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중도적 개혁정당인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으로부터는 진보주의로, 민주노동당으로부터는 보수주의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수와 진보가 혼재하는 이런 특성은 이념적 혼돈을 보여주는 문제가 있지만 동시에 21세기적 다원성과 복합성에 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의 이념구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이와 연관해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한국적 기준 가운데 ‘한미관계’는 유효하되 ‘대북관계’는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하는 반면 정부와 시장, 성장과 분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서구적 기준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민노당은 후자의 이슈들을 전면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대화통해 생산적 결론 도출을▼

둘째, 세계가 탈이념 사회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이념구도는 쉽게 해체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수많은 의제에 대한 진보적 중도적 보수적 접근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 사이의 활발한 논쟁은 민주주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17대 국회는 보수-중도-진보의 ‘3분 구도’가 벌이는 본격적인 이념 경쟁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장점 중 하나는 미리 주어진 해답이 없다는 데 있다. 대화와 타협을 존중하되 정책 대안에 있어서는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국회가 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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