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의 역사는 깊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반역자의 가족을 노비로 삼거나 참수했다. 조선 때는 연좌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모반대역죄의 경우 죄인은 능지처참하고 아버지와 16세 이상 아들은 교수형에 처했다. 16세 이하 아들과 어머니 처첩은 노비로 삼았다. 죄인의 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이 연좌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됐으나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을 거치면서 다시 살아났다. 특히 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사정이 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다. 영화 ‘실미도’에서 설경구가 맡은 역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직폭력배가 된 인물이다.
▷한나라당이 정치인의 부패행위에 대한 연좌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정치인의 배우자 수행비서 운전사 집사 등 대리인이나 측근이 뇌물을 받으면 본인이 받은 것으로 보고 처벌한다’는 조항을 부패방지법이나 형법에 삽입하자는 것이다. 과거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연좌는 연좌다. ‘깃털’만 처벌되고 ‘몸통’은 법망에서 빠져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우리 정치현실에서 제도로 정착되면 부패추방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수단을 다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법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제도가 아니라 정치인과 주변인사 모두 스스로 부패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마음-행동 연좌제’라고 할 수 있을까.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