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천광암/상속세

  • 입력 2004년 5월 4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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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화와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거리인 파리 마레지구에서도 피카소미술관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꼽힌다. 피카소미술관은 20세기 회화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다. 작품 한 점 한 점이 거액에 거래되는 피카소의 작품을 이 미술관이 수백점이나 소장하고 있는 것은 고율(高率)의 상속세 덕분이다. 1973년 피카소가 사망했을 때 상속인이 엄청난 상속세를 낼 돈이 없어 작품으로 대신 낸 게 피카소미술관을 설립한 밑천이 됐다.

▷지난해 9월 타계한 신용호 전 교보생명 회장의 유족이 단일 상속세 납부액으로서는 국내 최고액인 1338억원을 신고했다고 해서 화제다. 물론 금액의 크기만을 놓고 신 전 회장보다 더 많은 부(富)를 쌓았지만 상속세는 적게 낸 재산가들을 새삼스레 비교할 일은 아니다. 생전에 낸 증여세를 포함시키고 인플레이션 효과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국세청의 조사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십분 감안한다 하더라도 신 전 회장 일가의 상속세 신고는 돋보인다.

▷상속세는 실체에 비해 상징성이 큰 세금이다. 일반 국민과의 관련성이나 세수(稅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낼 만큼 재산을 남기는 사람은 146명 중 1명꼴이다. 지난해 국세청이 상속세로 거둔 돈은 모두 4853억원, 여기에 증여세 8297억원을 합해도 전체 국세(國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정부가 상속세 완전포괄주의를 추진하면서 적지 않은 재산가들이 증여를 서둘렀고, 그 덕에 증여세 수입이 81%나 늘어난 데 힘입은 결과다.

▷상속세를 강화하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일부 선진국은 이를 폐지하거나 다른 세금으로 대체하는 추세다. 상속세가 경제발전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인 재산형성 의욕을 위축시키고, 벌어들일 당시 세금을 낸 재산에 다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이중과세(二重課稅)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는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데이비슨 록펠러 등 억만장자들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며 상속세 폐지를 앞장서 반대했다.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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