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2년 蘇 기관지 프라우다 창간

  • 입력 2004년 5월 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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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다(러시아어로 ‘진리’를 의미)에는 진실이 없고, 이즈베스티야(고지·告知)에는 뉴스가 없다.”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세기의 뉴스인 ‘남한의 북침(?)’ 사실을 1면도 아니고 3면에 어정쩡하게 게재했다. 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4면에 보일락 말락 처리했다.

세계가 아는 빤한 거짓말을 쓰는 게 못내 쑥스러웠을까. 아니면 ‘평화를 수호하는’ 사회주의 진영의 침략행위에 당황한 것일까.

1912년 5월 레닌에 의해 창간된 프라우다. 한때는 발행부수가 1000만부를 웃돌았고, 서방세계가 ‘철의 장막’을 들여다보던 유일한 창(窓).

그 프라우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거짓’을 읊던 시절에는 번창했으나, ‘진리’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부터 까물까물해진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언론은 보수 일색으로 바뀌었다. 옐친을 등에 업고 부(富)를 키운 신흥재벌들은 언론에 손을 뻗쳤고 이들 재벌언론은 노골적으로 ‘옐친 편들기’에 나섰다.

러시아의 ‘정(政)-경(經)-언(言)’ 유착은 갈수록 심해져 “언론은 기업의 무기요, 언론인은 기업주의 사병(私兵)”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 와중에 자유언론(?)의 기치를 내건 게 프라우다다. 1996년 대선 때는 나 홀로 공산당 편에 섰다. 그러나 이때 이즈베스티야는 슬쩍 입장을 바꿨다.

이즈베스티야는 불확실한 시대의 ‘진리’에 집착하기보다 뉴스를 알리는 데 충실하고자 했고, 러시아 최고의 유력지로 성장했다.

반면에 프라우다는 완고했다. 보수파의 쿠데타 이후 ‘불온 언론’으로 찍혀 수차례 정간과 복간을 거듭했으나 의연했다. “프라우다는 정간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진실은 중단되지 않는다.”

프라우다는 줄기차게 “시대가 레닌을 다시 부른다”는 ‘흘러간 노래’를 불렀다. 그 진지함이라니!

그 프라우다는 지금 어찌 되었는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각기 그 후예를 자처하는 5, 6개의 군소(群小) 프라우다가 볼썽사나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역사의 격동기에 프라우다는 변화를 거부했고, 그 대가는 쓰라렸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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