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1년 로널드 레이건 피격

  • 입력 2004년 3월 29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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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서로 힘을 합치라는 신의 섭리지요.”

1982년 6월 7일. 바티칸 도서관에서 처음 대면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레이건은 1년여 전 정신병자인 존 힝클리의 저격을 받았으나 살아났고, 교황 역시 바로 그 6주 후 총격을 당했던 것이다.

이들은 50분간에 걸친 밀담에서 ‘공산주의 몰락’과 ‘정교(政敎)공조’를 긴밀히 협의했다. 10여년 뒤 뉴스위크는 두 사람의 이날 자리가 소비에트체제를 붕괴시키는 ‘회오리바람(다니엘서 11장 40절)’을 불러일으켰다고 썼다.

1981년 3월 30일. 힝클리가 레이건을 향해 쏜 6발의 탄환은 모두 빗나갔으나 그 불똥은 요란했다(레이건이 맞은 총알도 방탄차에 맞고 튀어나온 유탄이었다).

가장 사소(?)하기로는 이날 예정되었던 아카데미 시상식 행사가 연기된 것.

그리고 힝클리의 호텔 방에서 ‘조디, 내 사랑을 보여 주겠소’라고 쓴 편지가 발견되면서 ‘죽음을 부르는’ 스토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배우 조디 포스터의 광적인 팬이었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바로 백악관에서 일어났다.

레이건 정권의 실세들이 그 권력의 공백을 틈타 위험천만한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유고라는 그 국가비상사태에!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긴급각의에서 헤이그 국무장관과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거칠게 맞붙었다. “부통령이 도착할 때까지 통치권은 본인에게 있다!” “그때까지 군(軍)통수권은 내게 있다!” 당시 ‘아버지 부시’ 부통령은 출장 중이었다.

저격사건은 또 한국에서 때 아닌 대통령 경호원의 ‘자질논쟁’을 불러왔다.

백악관 경호원들이 총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장면이 TV로 중계되자 1974년 ‘문세광 저격’ 당시 청와대 경호원들이 커튼 뒤로 숨었던 치욕의 장면을 떠올린 것이다.

경호원은 ‘인간방패’라고 했던가. 영화 ‘사선에서’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경호를 맡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댈러스에서 죽었어야 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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