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배금자/장자의 싸움닭에서 배운다

  • 입력 2004년 3월 18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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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변호사 직업이 싫어질 때는 변호사 일이 싸움닭 같다는 느낌이 들 때다. 객관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변호사 역할에만 충실하려고 노력하지만 사건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빠져들어 상대방이나 증인의 거짓말에 화가 날 때가 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이 한 말이나 진술서를 법원에서 손바닥 뒤집듯이 부인하는 일도 있다. 위증죄 처벌 경고나 선서는 양심이 마비된 사람에게는 소용없다. 이런 사람을 상대하는 재판을 마치고 나올 때는 돈을 받고 대신 싸워 주는 싸움닭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불같은 기운-증오심으론 안돼 ▼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싸움닭이 아닌 도인의 마음으로 내 직업에 충실할 수 있을까를 화두로 삼고 있다. 장자의 우화에는 싸움닭이 도인이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왕을 위해 싸움닭을 훈련시키는 기성자라는 사람이 닭 훈련을 시켰다.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을 때 기성자는 그 닭이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아직 불같은 기운이 넘치고 어떤 닭과도 싸울 자세며, 자신의 기운을 너무 믿고 있다”고 했다. 다시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직 다른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불끈 성을 낸다”는 것이었다. 또 열흘이 지났지만 멀었다고 했다. “아직 상대를 보면 노려보고 깃털을 곤두세운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침내 그 닭이 싸울 준비가 다 되었다고 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움직이는 빛이 안 보이고 먼데서 보면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과 같다. 이제 성숙한 싸움닭이 되었다. 어떤 닭도 덤비지 못할 것이며 보기만 해도 도망칠 것이다.”

불같은 기운이 넘치는 단계는 가장 유치하고 초보적인 단계다. 불끈 성을 내는 단계, 노려보는 단계도 멀었다. 외부 현상에 마음의 동요가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비로소 도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도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는 참으로 차원 높은 이상사회일 것이다. 이상사회는 바라기 힘들어도 최소한의 양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다행일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불같은 기운이 넘치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상대에 대한 증오심과 투쟁의식이 충천하다. 북한은 두둔하면서도 국내의 반대 세력에는 악랄한 앙갚음을 해 주겠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이해되지 않는다. 증오심은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의 수준을 파괴하고 끌어내릴 뿐이다.

중국 양나라의 재상 혜자는 장자를 경계했다. 어느 날 장자가 순수한 목적으로 혜자를 만나러 오고 있었는데 누군가 혜자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 장자가 혜자를 몰아내고 재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오고 있다고. 혜자는 장자를 체포하기 위해 온 나라를 수색했지만 실패했다. 장자는 그 후 혜자 앞에 나타나 불사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대는 남쪽 나라에 사는 신비로운 불사조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 불멸의 새는 신성한 나무 위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고, 고결하고 귀한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순수한 샘이 아니면 물을 마시지 않는다. 한번은 올빼미 한 마리가 반쯤 썩은 쥐를 뜯어먹고 있다가 하늘로 날아가는 이 불사조를 보았다. 올빼미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는 쥐를 빼앗길까 두려워 꽉 움켜쥐었다. 혜자여, 그대는 왜 재상 자리에 집착하여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가?”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아쉬워 ▼

지금 이 나라는 오로지 나라를 생각하는 순수하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원로들과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오해를 받고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무차별적으로 엄청난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숭고한 대의를 위해 일을 하거나, 소신껏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의 비방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얻고 얻지 못함에 마음 상하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와 당당함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등불이 될 것이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bae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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