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식 올린다는 말도 못하면서 공개결혼식을 올린 이유가 뭘까. ‘사랑하니까’가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는 성적 소수자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대답이다. 법적으로 인정받으며 아이도 키우고 건강보험 등 결혼한 부부가 받는 혜택을 당당히 누리고 싶다는 얘기다. TV드라마에 나오듯 동거를 새로운 패션처럼 여기는 젊은층이라면 결혼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있는지 놀랄 만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선 동성결혼이 나라를 둘로 갈라놓는 ‘문화전쟁’ 이슈가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결혼증명서를 받는 동성커플이 줄을 잇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의 결합’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지지한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유력한 존 케리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경제나 외교에 대해 말할 수 없으니까 보수층 결집을 노려 동성결혼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케리 의원도 동성 ‘결합’이 아닌 ‘결혼’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너무 진보적 입장을 보였다가는 표를 잃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캘리포니아주가 최초로 흑백결혼금지법에 저항하고 나섰을 때 미국인 열 명 중 아홉 명이 반대했다. 연방대법원이 인종간 결혼을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19년이 지나서였다. 동성결혼은 보수냐 진보냐의 성향 말고도 가족과 종교, 사회와 정부의 역할 등 좀 더 많은 변수가 얽혀 있어 해법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지지한 바로 그날, 영국에선 보수당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고루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으려 ‘게이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다. 사랑도 정치적 풍향을 타야할 모양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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