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8년 극작가 브레히트 출생

  • 입력 2004년 2월 9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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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뒤틀린 나무는/ 토양이 좋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나무가 불구(不具)라고 욕한다….’(‘시(詩)에 불리한 시대’ 중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는 20대에 이미 독일 문학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예링)

우리는 그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현대 연극을 논할 수 없다.

그는 서사극의 창시자였다. 그는 관객들과 무대 사이에 ‘심리적 공간’을 두었다. 해설자가 연극의 내용을 설명한다든지, 클라이맥스 직전에 극이 중단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무대와 관객을 격리시켰다. 현실(現實)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소격(疏隔) 효과’다.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것을 그는 묻고자 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일찍이 갈파했던 브레히트. 그는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망명길에 올라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꿔가며’ 15년간을 떠돌았다. ‘갈릴레이의 생애’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과 같은 대작이 이때 나왔다.

그는 다작(多作)의 시인이기도 하다. 연극 자체보다는 연극 바깥의 세계를 바꾸기를 원했던 것처럼 시인으로서 그의 본령은 ‘시를 쓸 수 없게 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데 있었다.

‘준트 해협의 푸른 보트와 즐거운 요트를/ 나는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어부들의 찢어진 그물뿐이다./ 왜 나는 마흔 살의 소작인 여자가 허리를 구부리고 걷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가?/ 소녀들의 가슴은 예전처럼 뜨거운데….’

문학적 형식을 통해 물어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미학도 아니고 리얼리즘의 미학도 아니다. 그것이 브레히트의 심미적 모토였다.

그는 ‘동료의 시체를 넘어서까지’ 자신의 몫을 챙기려드는 부르주아 계층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있는 것은 그것을 위해 좋은 자에게 속해야 한다”는 그는 끝까지 마르크시스트로 남았다.

그는 임종의 자리에서 이렇게 구술했다. “나는 편안한 작가가 아니었다. 내가 죽은 뒤에도 그렇게 남기를 바란다.”

그의 말은 가히 틀리지 않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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