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 입력 2004년 1월 16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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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정채봉 지음/179쪽 8000원 샘터사

장끼와 까투리가 새들의 사제인 올빼미를 찾아갔다. 장끼는 말했다. “결혼하고자 합니다.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올빼미가 물었다. “다투어 본 일이 있는가?”

장끼가 대답했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니까요.”

올빼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한바탕 다툰 다음에 다시 오게.”

까투리가 대꾸했다. “다투면 결혼은 왜 합니까?”

올빼미가 한참 뒤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함께 사는 데는 ‘사랑해’보다 ‘미안해’라는 말이 중요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장르를 통해 현대인이 잃기 쉬운 동심과 사랑, 자연, 나눔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준 정채봉(1946∼2001). 그의 3주기(1월 9일)를 맞아, 서점에서 사라진 그의 구슬과 같은 글들을 다시 모았다.

‘그 조제(調劑)’에서 작가는 조물주가 사랑을 다음과 같은 내용물로 조제했다고 설명한다.

‘꽃에 머무는 이슬방울 청순,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감미, 여지가 없는 고통, 끝없는 갈증… 그러나 불보다도 무서운 질투를 양념으로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넣은 것은 휘발(揮發)성분.’

솜 속에 칼날을 감춘 듯한 그의 잠언은 어린이부터 장년층까지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수많은 접점을 갖추고 있다. 이(利)를 발견하면 원칙도 명예도 팽개치고 쫓아가는 오늘날의 세태에 대해 ‘족제비에 대한 명상’은 죽비소리와도 같이 읽힌다. ‘영국에서 애용되는 족제비 사냥은 이렇다. 사람들이 언덕을 포위하여 올라간다. 통로를 열어 두고서. 그 막다른 길의 함정에는 오물이 퍼부어져 있다. 자기 털에 오물 묻히기를 거부하는 족제비. 그리하여 사람들은 족제비를 고스란히 생포한다. 먹이와도, 생명과도 절대 바꾸지 않은 족제비의 그 털을.’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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