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허영/'참여정치' 유혹에서 벗어나야

  • 입력 2004년 1월 4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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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깃발 아래 출범한 노무현 정부 1년 동안 국민의 정치 참여가 눈에 띄게 활성화됐다. 인터넷 매체를 통한 국민의 정치적인 관심 표명이 많아졌고, 인터넷 매체가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장려할 일이다.

▼'침묵하는 다수' 배제해선 안돼 ▼

그러나 참여민주정치에도 함정과 한계는 있다. 참여정치가 자칫 직접민주정치의 경향을 띠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대다수 선진국에서도 참여정치를 활성화하기보다 대의정치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쪽에 관심을 쏟고 있다. 참여민주정치가 직접민주정치로 변질되는 과정에서의 역기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난 1년을 돌이켜봐도 노무현 정부가 지향하고 장려한 참여정치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민의 정치참여 장려가, ‘관중민주정치’를 ‘함께하는 민주정치’로 유도함으로써 마치 민주정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나온 것이라면 문제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요구와 ‘대선자금 10분의 1’ 발언도 국민과 ‘함께하는’ 직접민주정치만이 더 많은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환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사모’ 모임에 참석해 ‘시민혁명’을 당부한 것도 같은 취지라고 할 것이다.

참여민주정치는 그 매력적인 함의(含意)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국민은 주권자이기 때문에 ‘국민의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로 절대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참여정치의 정신적 고향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소리’는 일상적 정치현실에서는 ‘목청 큰 사람들의 소리’ 또는 ‘일부 극성스러운 국민의 소리’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목청 작은 사람들의 소리’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소리’는 참여정치에서 배제 내지 무시될 수밖에 없다.

흔히 국민의 소리를 여론으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여론은 그 특성상 가변적일 뿐 아니라 얼마든지 오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여론만 따라다니는 정치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으로 흘러 정책의 일관성을 지킬 수 없다. 노 대통령 1년간의 각종 정책 혼선이 이를 잘 말해준다.

참여정치를 내세워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경우 책임정치는 실현될 수 없다. 책임질 주체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다원사회에서 여론은 양극화되기 마련이지만 그 양극화를 완화할 수단이 없다. 참여정치가 성공하기 위해선 여론에 따른 정책 결정에 모두가 승복해야 하나 이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그렇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정치가 국민통합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참여정치의 가장 치명적 결함은 다수 국민이 침묵할 경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소수집단이 국정을 좌우하는 소수의 독재가 초래된다는 점이다. 대의정치에서는 대다수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과 침묵으로 공공이익이 치명적 손상을 입는 일은 없다. 그러나 참여정치에서는 다수 국민이 침묵할 경우 공익의 손상은 돌이킬 수 없게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치에서는 모든 국민이 원하건 원치 않건 언제나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유도해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정치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선 자극적인 미끼를 던져야 한다. 노 대통령의 잦은 돌출발언과 정치행태는 바로 그러한 미끼의 상징성을 가진다. 그런데 미끼에 의해 강요된 참여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조화될 수 없다. 자유시민은 정치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나 자녀교육 등 사사로운 관심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갈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와 대화하고 타협해야 ▼

노 대통령은 이제 어려울 때마다 국민에게 정치미끼를 던지는 참여정치의 유혹에서 벗어나 대의정치의 광장으로 돌아와 부족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와 대화하고 타협하는 균형과 조화와 통합의 정치를 펴주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 헌법이 채택한 견제와 균형의 대통령제 대의민주주의를 준수하는 길이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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