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실 응급실’ 왜 해결 못하나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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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전국 유명 대형 병원의 응급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 중 40%가 장비와 의료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실 응급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의 경우 지역 응급진료센터 32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곳이 ‘퇴출’ 대상에 올랐고, 부산은 6곳 중 1곳만 적격 판정을 받았다. 다른 지방과 군소도시는 더 열악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어느 병원으로 실려 가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진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 명문 의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큰 사고를 당하면 무조건 우리 병원으로 가자고 한 다음 의대생이라고 외쳐라.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지역에서도 병원에 따라 100점 만점에 최저 8점에서 최고 94점까지 편차가 있으니 그럴 법한 일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사 결과 응급실에서 숨진 환자의 절반 정도가 부실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된 응급실로 실려 갔다면 이 중 절반가량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많은 환자가 병상 부족으로 응급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리를 헤매다 숨진다는 사실이다. 연말연시 전국의 ‘부실 응급실’을 오가는 하루 평균 1만여 응급환자들의 안위(安危)가 걱정이다.

현재 국내 응급실의 의료수가는 100원을 투자하면 46원을 손해 보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래서야 아무리 응급실에 대한 투자를 외쳐도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감기 복통 등 증세가 가벼운 환자들의 응급실 방문을 억제하고,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수가를 높여 병원과 의사에게 실질적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올해부터 시작된 민간의료기관 응급 설비에 대한 국고 지원과 응급의학 전공의에 대한 수련보조수당 지급 및 응급전문 간호사제도에 대한 지원과 투자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부실한 응급실은 응급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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