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심청'…심청은 중국 늙은 부호의 첩이 되어…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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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1, 2/황석영 지음/각권 309, 333쪽 각권 8800원 문학동네

죽음을 딛고 연꽃 속에서 다시 피어난 누이, 심청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가 이순(耳順)을 맞은 작가 황석영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19세기 말 황해도 황주 땅에 태어난 심청은 그러나 바닷물에 수장되지 않는다. 뱃사람들이 허수아비에 심청 이름을 써서 바다에 던져버린 뒤, 열다섯의 청은 ‘롄화(蓮花)’라는 이름으로 낯선 삶을 헤쳐간다.

중국 난징의 늙은 부호의 첩으로 팔려나간 뒤, 그가 죽자 기루(妓樓)에 들어간다. 악사 동유를 만나 처음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지만, 납치돼 대만의 밑바닥 창녀로 전락한다. 영국인 제임스의 눈에 들어 싱가포르에서 그의 부인 노릇을 하다, 안락한 삶을 스스로 걸어나와 오키나와에서 주점을 연다. 왕실 귀족인 가즈토시의 부인이 되어 처음 행복한 삶을 누리지만, 오키나와의 지배권을 행사하던 일본 사쓰마번(藩)의 횡포로 남편이 처형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샤들의 ‘마마상’으로 변신한다….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자유무역과 시장확보로 시작됐습니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유곽이었죠.”

작가는 청이가 롄화로, 로터스(Lotus)로, ‘렌카’로 거듭 이름을 바꾸는 과정이 동아시아가 아이덴티티를 상실하는 과정과 맞물린다고 말했다. 청이 또는 롄화 자신도 남자들과 몸을 섞으며 ‘청’이와 ‘롄화’가 서로를 거부한다. 한 여인의 자아분열 속에, 근대화 과정에서 동아시아가 겪은 자기상실과 자기분열이 겹쳐진다.

“어떤 학자는 아시아의 근대를 ‘독방에 갇힌 수컷’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동아시아의 민중은 스스로를 거듭나게 할 동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배계층은 이를 억압하고 싹을 잘라버렸어요. 그 결과 동아시아가 갖고 있던 포용과 모성성의 미덕은 말살돼 버렸습니다. 잊혀진 우리의 여성성과 모성을 심청을 통해 되살려보고자 했어요.”

책장 여기저기서, 독자는 작가가 스스로 ‘즉물적이며 해부학적’이라고 밝히는 성애(性愛) 묘사와 마주치게 된다. “‘옛날의 황석영’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데…. 나이 들어 진이 빠지니까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청이 성을 나누거나 팔아야 하는 상황들이 워낙 절박하고 진지해서 천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작가는 주한 영국대사관의 주선으로 2004년부터 2년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할 예정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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