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중국이 …' 프랑스 혁명 배경엔 중국 사상이…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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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 일가가 고향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떠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13세기에 중국을 여행했던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통해 중국문화를 서양에 전했고, 그 후 18세기까지 많은 유럽인들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마르코 폴로 일가가 고향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떠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13세기에 중국을 여행했던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통해 중국문화를 서양에 전했고, 그 후 18세기까지 많은 유럽인들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주겸지(朱謙之) 지음 정홍석 옮김/466쪽 1만8000원 청계

이 책의 원제목은 ‘중국 사상이 서구 문화에 끼친 영향’. 원제목이 내용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번역본의 제목에도 장점이 있다.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는 오늘날 압도적 서구 우월주의에 젖어 있는 한국이나 동아시아의 독자들에게 이제는 잊혀진 과거 중국 문명 내지 동양 문명의 우수한 전통을 상기시키는 데 도움이 될 제목이란 것이다.

서구에 대한 중국 문명의 영향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를 수용한 서구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들 문명의 시각에서 중국 문명을 독자적으로 수용해 이용한 것인 만큼 중국 문명이 서구의 근대를 만든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4∼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와 특히 18세기 프랑스 독일 중심의 계몽사조 형성기에, 중국 문명이 서구 지식인의 문화·사상운동을 촉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몇몇 전문가 외에 아는 사람이 드물다.

우선 저자는 유럽 르네상스의 물질적 기반이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 중국 문명의 수용으로 마련됐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당시 칭기즈칸에서 쿠빌라이까지 세계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역할을 매개로, 중원의 원(元) 제국이 르네상스 시기 서구인에게 이상적인 선진 물질문명의 모델로 얼마나 선망의 대상이었던가를 설명해준다. 이 시기 육로를 통한 서구인들의 아시아 여행이나 지리상의 발견도 사실은 인도가 아니라 그 후방의 세계제국인 중국을 목적지로 삼고 감행됐던 것이다. 16세기부터 중국에 진출한 서구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포교의 일환으로 자연과학 지식을 중국에 전했지만, 역으로 그들을 통해 전해진 중국에 대한 정보와 학문적 연구성과는 서구의 문화와 사상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17∼18세기 유럽 궁정과 귀족의 로코코 문화에도 정원, 건축, 그림, 복식 등의 면에서 중국이 미술적 영향을 끼친 사실을 밝혀준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해 서술되는 주제는 주자학 중심의 중국 유교문화와 정치제도가 18세기 서구 계몽사조와 프랑스혁명에 끼친 영향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중국의 유교 도덕과 정치는 서구 기독교의 종교 지배에 저항하는 계몽운동의 유력한 도구가 됐다.

이성의 시대를 대표하는 계몽사조는 프랑스의 볼테르나 백과전서파 학자들, 독일의 라이프니츠와 칸트 등 많은 지식인들을 통해 서구에 본격적인 근대를 가져왔으며, 철학문화인 중국 문명이 계몽사조의 이상형으로 선전됐다는 것이다. 과학을 토대로 한 서구 문명은 종교의 시대로부터 철학의 시대로 옮아갔으며, 19세기에는 과학의 시대로 나아가는 참이었다.

비록 몽테스키외나 루소 등은 중국 문명의 도덕적 장점과 아울러 군주의 전제정, 발전의 지체 같은 약점도 발견하기 시작했지만, 18세기 유럽에서 중국 문명의 지위는 제국주의 시대인 다음 세기와는 전혀 달랐음을 오늘날 동아시아인 자신들도 망각하고 있다.

조병한 서강대 교수·동양사 elfsong@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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