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재벌가 부인과 며느리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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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안의 화제는 단연 재벌가 부인과 며느리에 관한 얘기다. 점잖은 자리건 술좌석이건 이에 대한 호기심 어린 얘기들이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한다. 언론사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종종 호사가들의 귀동냥 대상이 되곤 하지만, 매사 들은 것을 본 것처럼 말하는 ‘저잣거리 통신원’들은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정보수집 능력과 전파력은 정말 대단하다. 얼마 전 국내 굴지 재벌 총수가 곤욕을 치를 때도 그 집 내외의 불화설이 수사의 단서가 됐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북한 실력자를 ‘알현’하고 왔다는 여배우에 관한 소문도 파다했다.

▷화제의 두 사안은 충분한 흥행 요소를 갖고 있다. 우선 모든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선망과 질시의 대상인 재벌가를 무대로 하고 있다. ‘남자 배우’는 한때 국내 10대 재벌 기업의 총수와 국내 굴지 재벌가의 젊은 상속자이고, ‘여자 배우’는 60, 70년대를 풍미했던 정상의 가수와 90년대 브라운관의 톱스타로 캐스팅도 짱짱하다. 시가와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가수 출신 재벌 부인은 최근 이혼한 남편과 톱스타들의 적나라한 애정 행각을 담은 자서전을 펴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뭔가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는 탤런트 출신 재벌가 며느리는 야밤 강변에서의 외제 승용차 도난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 많은 남자와 미모의 여성의 결합은 ‘공생(共生)의 조합’이었다. 돈 많은 남자는 아낌없는 투자로 보란 듯이 미모와 재주를 가진 여자를 차지해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고, 미인은 자신을 오래도록 뒷바라지해 주면서 욕망 또한 채워 줄 수 있는 재력가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서로가 서로에게 원한 것은 남편과 아내의 자리라기보다는 돈과 미모가 아니었을까.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1906∼1975)가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칼라스와 내연(內緣)의 관계를 맺어 문화거물로 떠올랐고, 이후 고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을 차지해 미국의 최고 상류사회로 진입했던 것도 그런 예일 것이다.

▷돈 많은 남자와 미모의 톱스타의 결혼은 흔히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의 결합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신데렐라가 젊음과 미모를 잃어버린 이후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왕자는 십중팔구 왕이 됐겠지만 신데렐라는 젊고 싱싱한 새 신데렐라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뒷방에서 인고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까. 사랑 없는 물질과 육체의 결합은 노년에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부자에게 미인은 과시욕의 대상이고, 미인에게 부자는 욕망의 후원자였을 테니까.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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