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대부업 양성화 1년 실태점검

  • 입력 2003년 10월 7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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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8일이면 정부가 ‘대부업(貸付業)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을 시행한 지 만 1년을 맞는다.

지난해 ‘신체포기각서’ 등 사채업자들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사채업을 양성화하기 위해 이 법을 도입했다. 금리 상한선을 연 66%로 묶었고 폭행·협박을 통한 빚 독촉에 대해 최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했다.

양지(陽地)로 나온 지 1년. 대부업체 이용자 및 이용 경험자의 수는 300여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대부업계는 제3금융권으로의 도약과 사채업으로의 복귀라는 양 갈래 길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제1·2금융권과 손잡고 성장=지방에서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40)는 올 1월 지역 상호저축은행에서 연 17%의 이자로 1억원을 대출받았다.

1년 전만 해도 이씨는 아는 전주(錢主)로부터 자금을 받아 200% 이상의 이자로 급전(急錢)을 빌려주던 사채업자였다. 대부업체로 등록한 뒤 고객들이 크게 늘자 평소 알던 저축은행 직원이 ‘돈을 빌려가지 않겠느냐’며 연락을 해왔다.

이씨는 같은 시기 저축은행의 대출알선(대출모집인) 업무도 시작했다. 고객들에게 저축은행의 대출상품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것. 법적으로 대부업자는 대출모집인을 할 수 없어 대출모집인 등록은 다른 사람 명의로 했다.

이처럼 대부업체들은 기존 금융권과의 공생(共生)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은행, 보험사, 저축은행들이 대부업체에 빌려준 돈은 3582억여원에 이른다.

대부업체들이 기존 금융권을 찾는 이유는 과거 사채 전주로부터 조달한 돈에 비해 금리가 낮기 때문. 전주가 요구하는 30% 안팎의 이자로는 도저히 대부업법 이자상한선(연 66%)을 맞출 수 없다. 예대(預貸)금리 차가 30%를 넘더라도 고객의 40%가 연체하는 상황에서 채권추심비용과 법인세 등을 빼면 수익이 나질 않는다는 것.

최근엔 급전 대출시장에서 경쟁관계였던 신용카드사, 캐피털사들도 대부업계와의 사업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대부업체들의 모임인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한대련)가 10일 개최하는 사업제휴 간담회에는 카드, 캐피털사 10여곳이 참가를 신청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연체자 상당수가 대부업체를 찾는 만큼 이들과 제휴하면 연체율을 낮출 수 있다”며 “또 신용도가 높아진 대부업체 고객을 우리 고객으로 흡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 사채업자로 돌아갈래!=기존 금융권과 손을 잡은 중대형 업체들과 달리 소규모 대부업체들은 다른 길을 택하고 있다.

올 2월 대부업체 등록을 한 강모씨(39)는 8월 등록을 취소하고 다른 도시에서 사채 사무실을 열었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기존 고객들의 연체가 급증했고, 대형 업체들이 비교적 우량 고객들을 선점했기 때문에 그를 찾는 고객들은 더욱 부실한 사람들뿐이었다.

강씨는 “대출금 300만원의 하루 이자가 5400원인데 이 돈 받으려고 차 타고 밥 먹으며 다닐 순 없다”며 “사채업으로 대출 이자를 높여도 돈을 빌리겠다는 사람은 널려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강씨처럼 등록을 취소한 대부업체는 전체 등록업체의 10%에 달한다. 연락이 두절돼 사실상 대부업법 준수를 거부한 업체도 25%에 이른다.

소규모 대부업체들이 다시 ‘지하’로 숨어드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허술한 관리·감독 때문이다.

각 시·도의 대부업 담당 직원은 1, 2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다른 업무를 하면서 겸업을 하고 있다. 대부업법 시행 이후 불법 채권추심행위, 고금리 대출로 고발된 업체도 9곳에 불과하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아무도 단속하지 않는데 법정 이자를 지킬 필요가 있느냐”며 “법을 지킬 생각이 없으니 등록을 취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대련 유세형(柳世馨) 회장은 “강력한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법을 잘 지키는 업체들까지 고금리 대출이나 사채업의 유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관심이 절실=최근 금감원은 각 시·도의 의뢰를 받아 전국 대부업체 140여곳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대부업계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금감원이 이번 조사에서 업계의 어려움과 개선방안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금감원 조사원들에게 넌지시 △안정적인 자금 조달경로 지원 △대손충당금에 대한 손비(損費) 인정 △철저한 단속·관리 등 업계의 요구를 말하기도 한다.

일본계 대부업체 해피레이디의 오승열(吳承烈) 사장은 “대부업법 시행 1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변화가 있었다”며 “이제 정부가 금융의 룰을 지키는 업체를 지원하고, 그렇지 못한 업체들을 가려낼 시기가 왔다”고 강조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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