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논란' 송두율교수 37년만에 귀국

  • 입력 2003년 9월 22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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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2일 오전 부인 정정희씨, 장남 준(왼쪽), 차남 린씨와 함께 37년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이훈구기자-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2일 오전 부인 정정희씨, 장남 준(왼쪽), 차남 린씨와 함께 37년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이훈구기자-
○'北공작원說' 수사 전망

22일 귀국한 송두율(宋斗律·59)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겠다고 밝히고 국정원과 검찰이 송 교수의 친북활동 혐의에 대해 본격 수사를 벌일 계획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국정원은 그동안 송 교수가 해외에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로 활동한 혐의와 국내 인사들에게 입북을 권유한 의혹 등에 대해 내사해왔으며 법원으로부터 이런 혐의에 대한 조사를 위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다.

특히 국정원은 97년 귀순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黃長燁)씨의 증언과 귀순자 및 자수 간첩의 진술 등을 통해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북한 대남 공작원’이라는 데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관련 자료를 2001년 국회 정보위원회와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송 교수는 자신을 김철수라고 증언한 황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며 2001년 8월 법원은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판결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현재 국정원과 이 사건을 지휘하는 검찰은 “송 교수를 법과 원칙에 따라 조사해 처리할 것”이라며 “그러나 조사할 사항이 많아 송 교수의 혐의 확인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국정원은 이날 송 교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한 점 등을 감안해 귀국 즉시 체포하는 사법 절차는 유보했다.

국정원에서는 송 교수의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정치적 고려 없이 기소를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송 교수의 혐의 입증이 여의치 않고 단순 방북 사실만 드러날 경우 기소유예 조치와 유사한 ‘공소보류’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입국 표정-일문일답

37년 만에 귀국한 송두율(宋斗律) 독일 뮌스터대 교수는 22일 서울에서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송 교수는 이날 밤 “시청과 남대문만 겨우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모르겠다”며 “가족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기 바란다”고 서울에서의 첫날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송 교수는 환영객과 취재진 등 300여명의 관계자들이 북적거린 가운데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송 교수 일행은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오전 11시20분경 비행기가 도착한 뒤 20분 이상 기내에서 기다렸다가 입국장으로 나왔다. 송 교수는 진남색 양복에 분홍색 와이셔츠, 붉은 꽃무늬 넥타이를 맸고, 부인 정정희(鄭貞姬)씨와 두 아들 준(儁) 린(麟)씨 등도 모두 진남색 계열의 정장 차림이었다.

송 교수는 몹시 감격한 듯 게이트에서 공항 1층까지 걸어나오는 동안 줄곧 얼떨떨한 표정이었으나, 부인 정씨는 침착했고 독일에서 태어나 자란 두 아들도 여유 있게 촬영에 응했다.

송 교수는 이어 공항 2층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선영에 가고 싶다”고 여러 번 강조했으며 귀국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국신고서를 쓰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귀국 후 초청자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 목사) 관계자들과 오찬을 함께 한 뒤 숙소인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오후 7시에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해외민주인사 한마당 행사’ 환영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27일까지의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환영행사장에는 조지 나이난 성공회 주교와 김근태(金槿泰) 통합신당 원내대표, 서경석 ‘시민의 힘’ 대표 등 각계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송 교수 내외는 행사장에서 이따금씩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송 교수는 이날 오후 5시40분경 숙소인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의붓어머니 박노희씨(75)를 만났다. 그는 “20년 만에 어머니를 뵈니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많이 늙어 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공항 기자회견 일문일답 요지.

-한국에 온 소감은….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돼 감개무량하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시간은 37년이라는 개인사가 응축된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용기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이제야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이 애통하기도 하다. 아들들은 난생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는 것인데 즐겁고 많은 것을 배워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성묘다. 선영이 경기 광주시 가톨릭묘지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강의할 계획은….

“은퇴가 5년 남았는데 그 전에라도 (내가) 자유스럽다면….”

―귀국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우리나라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인데 최근 그런 민주화의 결실을 언론을 통해 보면서 내가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송두율교수 누구인가

송두율(宋斗律) 교수는 1944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뒤 6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72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아래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막스 베버에 있어서 동양세계의 의미’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82년부터 뮌스터대에서 사회학 강의를 맡아오고 있다.

송 교수는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식인들이 탄압을 받던 74년 재독 유신반대 단체인 ‘민주사회 건설협의회’ 초대회장을 맡았고 91년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방북한 이후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공안당국은 그의 일련의 행보로 인해 그를 ‘반정부, 반체제인사’ ‘친북교수’로 분류하고 그의 국내 입국을 사실상 불허했다. 송 교수는 97년 귀순한 전 북한 노동당비서 황장엽(黃長燁)씨가 당시 안전기획부 산하 통일정책연구소를 통해 발간한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자에서 자신을 ‘김철수라는 가명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쓴 데 대해 소송해 2001년 “황씨의 주장은 진실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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