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500년前과의 對話…김인후 선생과 가상문답

  • 입력 2003년 8월 1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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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백승종 지음/488쪽 1만8000원 돌베개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산도 절로 물도 절로 하니, 산수 간 나도 절로/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이라, 절로절로 늙사오리.’ (‘하서집’ 중에서)

세월은 그렇게 흘러 조선 중기의 대학자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는 세상을 떠났고, 약 500년의 시간이 지난 21세기 초에 한 학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감히 님에게 여쭙습니다. 선비의 한평생은 어떠하였습니까? 선비의 일생을 요령 있게 정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백승종)

“백 교수의 질문은 그야말로 저 하늘의 뜬구름을 잡으라는 명령으로 들리오. 복잡한 인생살이, 그를 어찌 한마디로 말할 수 있으리오.”(김인후)

이렇게 시작된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이상적인 선비상, 선비의 일상사, 아내와 가정, 조선의 하늘과 땅, 스승과 벗, 과거 급제, 시와 술, 천명도(天命圖) 등을 넘나들며 김인후의 눈을 통해 본 16세기 조선 선비의 삶과 생각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미시사 연구자인 백승종 교수(서강대 사학과)는 이미 일제강점기의 평민 지식인 이찬갑의 내면세계를 탐구한 저서 ‘그 나라의 역사와 말’(궁리·2002)을 통해 그 시대에 대한 미시사적 접근을 시도한 바 있다.

그동안 미시사는 문자 해독능력을 지녔던 상층민들이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서술해 왔던 지배자 중심의 역사를 탈피해서 다양한 일상적 사료들을 활용해 하층민들의 생각과 행위를 밝히는 데 주로 활용돼 왔다. 그런데 백 교수는 “일상사의 연구 대상이 반드시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돼야 할 이유는 없다”며 이 연구 방법을 이번에는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사상을 밝히는 데 적용했다. 그리고 김인후에게 “역사란 민중의 역사만은 아니라오”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그가 펼쳐갈 새로운 미시사의 방향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혼란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는 시대라는 점에서 김인후의 시대와 현 시대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 교체기에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어떻게 풀어가는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에 성리학이 확고하게 자리 잡기 직전 조선의 지적(知的) 지형도에서 김인후는 매우 적절한 인물이다. 성리학과 함께 불교 도교 등을 익혔던 지식인들이 성리학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게 되는 16세기의 사상적 흐름이 바로 김인후의 삶 속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가상대담이란 형식은 김인후와 같은 인물에 접근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문사철(文史哲)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에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시나 발문 등의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고 이런 글들은 문학 이외에 분야에서는 제대로 평가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일단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될 경우 그 인물은 작가로 규정돼서 철학, 사학 등의 다른 분야에서 소홀히 되는 것이 다반사다. 1600편의 시를 남긴 김인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백 교수가 택한 대담의 형식은 그동안 각 분야에서 이뤄진 연구성과를 총동원해 김인후라는 인물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를 통해 그 시대 선비들의 삶과 생각에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중요한 대목마다 ‘하서집’의 내용을 정확히 인용해 역사가로서의 성실함도 보여준다.

역사 속의 인물을 단지 객관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만나는 일은 독자들뿐 아니라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에게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백 교수의 아내는 “지난겨울 독일 막스프랑크 역사연구소에서 이 연구에 몰두할 때 그 추운 날씨에도 매일 저녁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밝은 표정으로 귀가하던 백 교수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하루 종일 사료를 통해 김인후와 대화를 하다가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김인후의 시 한 수를 번역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백 교수는 “시와 술과 사람을 좋아했던 김인후라는 넉넉한 한 ‘인간’과 만나며 스스로가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약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대숲에 함께 앉아 천명도를 그리는 이 두 사람의 대화에 귀 기울이며 김인후라는 큰 인물과 만나고, 이를 통해 독자들도 스스로 변화해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것은 쉽게 맛보기 어려운 기쁨일 것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하서 김인후는 누구?▼

16세기 조선 중기의 문신. 19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퇴계 이황(退溪 李滉)과 함께 학문을 닦아 성리학이 조선의 학문으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고 삼국시대 이래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1540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으나 1545년 을사사화를 계기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전남 장성에서 성리학 연구에 정진했다. 1796년 문묘에 배향돼 후인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약 1600편에 달하는 시를 담은 ‘하서집’이 전해지고 있으며, 25년간 쓴 일기인 ‘일록(日錄)’,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서명사천도(西銘四天圖)’ 등의 저술은 소실돼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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