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도정일/게임문화의 빛과 그림자

  • 입력 2003년 7월 25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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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란 문제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와 맞물린 사회철학적 질문이다. 지금 한국은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 세계적인 도사급 아이들을 배출하고 있는 나라다. 초등학생들 사이의 최대 화제는 ‘게임’이고 중고교생은 물론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게임은 휴대전화, 채팅 등과 함께 성장세대를 구별 짓는 특징적 활동, 곧 ‘그들의 문화’가 되어 있다.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독 현상도 심각하다. 그런데 게임문화의 이 같은 확산의 배경에는 문화산업이니 성장동력이니 하는 것의 논리와 요청이 똬리를 틀고 있다. 산업적 요청에서 보면 아이들이 게임도사가 되는 것이 ‘자랑거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란 질문이 던져질 때 우리는 돈지갑 두들기며 “게임도사로 키운다”고 대답할 것인가.

▼산업엔 이롭지만 중독 위험성 ▼

컴퓨터 게임에는 넘치는 마력이 있다. 사회적 제약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억압이 최대한 배제된 자유의 세계다. 이 공간에서는 실세계에서 불가능한 다수의 분신과 다중 역할의 폭발적 창조와 놀이가 가능하다. 현실세계에서 실존인물 홍길동은 ‘하나’의 실물로 응고되어 있지만 사이버 세계로 들어오는 순간 그는 다수의 ‘아바타(avatar)’로 변신하고 실세계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페르소나’(가상인물)가 되어 색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페르소나들에게 성, 나이, 인종, 계급, 충성집단, 직업 등 실세계의 구분 범주들은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아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이런 변신, 이동, 다중역할의 경험은 마술적 스릴로 가득하다. 다수 이용자가 참가하는 다중역할놀이(Mud) 같은 게임의 경우 아이들은 그 만들어진 사이버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바라던 인물’이 되어 그가 ‘원했던 역할’을 수행한다. 거기에는 ‘불가능’이 없어 보인다.

이 놀랍고 용감한 세계는 바로 그 장점들 때문에 되레 어둡고 깊은 토굴이 되어 아이들을 삼키기도 한다. 불가능성이 최대한 배제된 세계의 상상적 경험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면, 동시에 ‘불가능’과 ‘장애’와 ‘제약’의 경험도 필수적이다. 그것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인간은 장애물에 자신을 견주어 보았을 때에만 자기를 발견한다. ‘놀이’는 가상적인 혹은 상상적인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 저쪽 세계로 넘어갔다가 이쪽으로 다시 넘어오지 못하면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라 ‘중독’이다. 중독은 정신적 질병이고 이상 상태다. 게임 중독자는 우주로 나갔다가 지구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비행사와도 같다.

게임을 포함한 모든 놀이는 현실에서의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교정력과 적응력을 키우는 데 기여할 때에만 의미 있다. 지금 우리의 성장세대에게 발생하고 있는 게임 중독 현상이 걱정스러운 것은 그 중독이 아이들을 마비, 좌절, 우울의 토굴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중독자는 가상적 능력과 현실적 능력 사이의 괴리를 수습하지 못해 혼란에 빠지고 페르소나와 실제 인격 사이의 단절로 인해 정체성 파탄을 경험한다. 현실로의 귀환 능력이 문제될 때 그는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지거나 난폭해진다. 자신감 상실이 가져오는 최악의 경우가 퇴장, 존재 말소, 페르소나 회수 같은 ‘그만두기’다. 게임의 세계에서 그만두기는 언제나 가능하다. 새로 시작하기가 언제나 가능한 것처럼. 그러나 게임 중독자는 게임에서 페르소나를 회수하듯 현실에서도 자기 존재를 회수한다. 이 그만두기가 우울증적 ‘자살’이다.

▼ ‘망가지는 아이들’ 대책 세워야 ▼

게임 중독의 폐해는 깊고 광범위하다. 이 폐해의 사회적 위험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사회는 산업적 이득만 따지고 돈 좀 번다는 사실에만 기분이 좋아 낄낄댈 것이 아니라 망가지는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자는 시민운동이 전개되는 이유의 일단도 이런 맥락 속에 있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영문학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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