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책의향기'선정/'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 입력 2003년 6월 27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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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이황 기대승 지음 김영두 옮김/608쪽 2만5000원 소나무

조선 후기 유학계의 두 거목이 주고받은 편지글 모음집. 편지를 통해 이뤄진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과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1527∼1572)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은 한국 지성사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뛰어난 학문 논쟁 중 하나다. 그러나 이들이 논쟁만을 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감어린 편지글을 살펴보면 학문에 관한 토론은 ‘우정’의 일부였을 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둘의 나이차를 보면 언뜻 우정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만났을 때의 신분을 생각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기이하기까지 하다. 1558년(명종 13년) 당시 58세의 퇴계는 오늘날 국립대 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이었다. 반면 고봉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상경한 32세의 젊은 ‘고시생’이었다. 고봉이 퇴계를 찾아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당돌하게 피력하면서 둘 사이의 교류는 시작됐다.

퇴계는 과거에 급제하고 귀향하는 고봉에게 먼저 편지를 보내 마음을 열었다. 이후 13년간 두 학자는 애정과 존경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퇴계는 “시대를 위해 더욱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는 기대를 전했고 고봉은 “벼슬길에 나아가는 은전을 입었으나 가난과 질병이 서로 괴롭힌다”며 신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때로는 신랄한 비판이,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있었다.

이 책은 생활과 학문에서 두루 예의를 갖추었던 당시 선비문화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다. 번역에 있어서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해 유려한 문장이 돋보인다. 덕택에 이 책은 난해한 학문서가 아니라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선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교양서가 됐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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