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청와대의 '나서기'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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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은 30일 “내달 2일 청와대에서 조흥은행 민영화 관련 토론회를 서별관에서 2시간 동안 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독자생존’을 요구하는 조흥은행 노조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는 게 청와대의 생각인 듯 하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이날 토론회는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정책실장이 직접 주재하고 경제담당 라인인 권오규(權五奎) 정책수석과 조윤제(趙潤濟) 경제보좌관, 대통령직속기구인 노동개혁 태스크포스의 박태주 비서관은 물론 민정수석실 관계자까지 망라해 참석할 예정이다.

정부측에서도 재경부 차관과 금융정책국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감독정책국장 및 예금보험공사 사장도 총출동한다. 노조 쪽에서는 조흥은행 노조위원장 외에 한국노총위원장과 금융노련위원장 등도 참석한다.

청와대가 이처럼 예정에도 없던 토론회를 청와대에서 열기로 한 것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왕수석’으로 불리는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이 조흥은행 노조 파업을 막기 위해 청와대 토론회를 제안한 것이 발단이었다. 노조파업을 막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는 게 민정수석실 쪽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매각방침을 정해 놓고 국제입찰을 통해 우선협상 대상자까지 정해놓은 마당에 노조와 원점에서 다시 토론회를 갖는 것이 문제해결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하는 의문이다.

더욱이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싸고는 청와대 내에서조차 정책수석실의 경제라인은 당초 계획대로 매각해야 한다는 ‘매각 불가피론’을, 민정수석실측은 “파업사태가 발생하면 조흥은행의 신뢰도가 떨어져 더욱 헐값에 팔 수밖에 없다”며 ‘파업불가론’을 내세우는 등 통일된 입장정리도 안돼 있는 형편이다.

정책수석실측은 30일에도 “이미 정부가 정한 원칙을 되돌릴 수는 없다”며 “노조와 한번 얘기해보는 자리이지 매각원칙을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조금도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시민단체와 학계 대표까지 참석하는 이날 토론회에 정작 조흥은행 매각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부처 국장들이 해야 할 일을 청와대가 일일이 다 나서니 요즘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겠다”며 머리를 저었다.

실무담당 라인은 제쳐둔 채 노조와 직접 담판을 벌이는 청와대의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란 원칙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최영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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