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 입력 2003년 5월 16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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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뉴엘 카스텔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나 사회적 허무주의를 넘어 네트워크와 사회, 네트워크와 자아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합리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마뉴엘 카스텔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나 사회적 허무주의를 넘어 네트워크와 사회, 네트워크와 자아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합리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마뉴엘 카스텔 지음 김묵한 박행웅 오은주 옮김/683쪽 2만4000원 한울

1990년대 세계 사회학계에 발표된 책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책 두 권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앤서니 기든스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와 함께 이 책을 꼽는다. 1996년 제1판이 나온 이래 수많은 논평과 격찬을 받은 이 책은 그 중요성으로 볼 때 정보사회의 고전인 대니얼 벨의 ‘후기산업사회의 도래’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필적한다.

스페인 태생의 카스텔은 1996∼1998년 정보사회의 도래가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탐색하는 기념비적인 삼부작 ‘정보시대:경제, 사회, 문화’를 발표했다. ‘네트워크사회의 도래’는 이 3부작의 제1권이다.

카스텔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세계는 미증유의 대격변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이 대격변을 낳은 것은 새로운 기술-경제체제, 즉 ‘정보화 자본주의’의 등장이다. 정보화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혁명적 변동은 단지 경제영역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자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이른바 정보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런 정보화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매개는 단연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과 집단을 연결하는 새로운 상호소통 형태를 말한다. 이 네트워크는 현재 신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조직 및 문화영역에도 급속히 확산돼 사회 전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조화하는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이 네트워크사회의 등장이 갖는 다양한 변화, 즉 신경제, 네트워크기업, 노동과 고용의 전환, 가상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조감한다.

카스텔의 책이 정보사회론의 선구자인 벨과 토플러의 저작을 넘어서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벨과 토플러가 후기산업사회 내지 정보사회에서의 지식 및 지식산업의 중요성에 주목했다면 카스텔은 네트워크가 정보전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그 범위를 전 지구적으로 확대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은 미국, 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포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객관적인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카스텔은 미래학을 현재학으로 하강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정보시대에 대한 카스텔의 분석이 이 책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이어 그는 3부작 중 제2부 ‘정체성의 힘’과 제3부 ‘밀레니엄의 종말’에서 네트워크사회의 도래가 가져오는 다양한 충격을 추적한다. ‘정체성의 힘’이 네트워크사회에서의 자아와 정체성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면 ‘밀레니엄의 종말’은 현재 진행 중인 역사적 변동을 거시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보시대의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카스텔은 미래학자들의 호들갑스러운 낙관론이나 전통적 사회학자들의 우울한 비관론을 모두 거부한다. 중요한 것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나 사회적 허무주의를 넘어서서 네트워크와 사회, 네트워크와 자아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합리적 실천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물론 이 책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카데믹 저작인 만큼 이 책은 ‘제3의 물결’보다도 다소 읽기 어려운 게 흠이라면 흠이다. 하지만 정보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잠시 인터넷 서핑을 중단하고 이 책을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아마 정보사회와 인터넷 세계에 대한 이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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