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투기꾼 만드는 정부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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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집을 빌려주고 월세를 받은 15만여명에 대해 집중적인 세무점검을 한다고 12일 발표했다.

건설교통부도 8일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소유권 이전 등기가 끝날 때까지 아파트 분양권을 사고팔 수 없게 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작년 9월 재정경제부와 건교부는 최근 5년간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에게는 청약자격을 주지 않고, 1가구 2주택 보유자에게는 청약 1순위 자격을 주지 않기로 했다.

시계를 몇 년만 과거로 돌려보자.

1999년 2월 정부는 분양권 전매 제한을 폐지했다. 이후 아파트 모델하우스마다 분양권을 사고팔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같은 해 11월에는 임대주택사업자 등록 요건이 대폭 완화됐다. 종전에는 5채를 확보해야 했지만 2채만 갖고 있어도 가능하게 됐다. 여기에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감면 혜택도 따라붙었다. 이 때문에 99년 말 7700여명이던 임대주택사업자는 작년 말 2만1000여명으로 늘었다. 2000년 3월에는 아파트 재당첨 제한 규정도 풀렸다. 또 만 20세 이상이면 세대주가 아니어도 청약통장에 가입해 1순위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2000년 3월 163만명에서 올해 3월 말에는 530만명으로 늘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서민 주거 안정’이 핵심이다. 최근 나오는 일련의 정책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임대주택 활성화와 분양권 전매 자율화, 청약통장 가입요건 완화는 정부가 가장 선호하는 부동산 정책 수단이다. 주택의 공급(임대주택)과 수요(청약통장 가입), 유통(분양권 전매)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대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세무당국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해야 할 판이다. 또 소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값이 뛰면 이를 팔아 큰 평형으로 옮겨가려는 평범한 서민은 ‘투기꾼’ 소리를 듣게 됐다. 누구나 청약통장에 가입해도 된다기에 아들 집 한 채 마련해 주려고 덜컥 청약통장에 돈을 맡겼던 사람도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린 꼴이 됐다.

이들은 모두 당시 정부의 정책적 부추김에 따라 나름대로 ‘합법적 투자’에 나선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젠 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투기세력이 돼 버렸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현 정부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정책의 연속성이나 안정성이 이렇게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정부 정책을 따라간 ‘보통사람들’이 몇 년도 안 돼 정부로부터 투기꾼으로 손가락질당하는 현실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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