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상영/진대제 장관의 주식

  •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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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폴 루드먼 트러스트’라는 회사와 백지위임 신탁(블라인드 트러스트)을 맺고 갖고 있던 주식과 채권을 모두 맡겼다. 이 회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주식과 채권을 사고팔면서 운용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매매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으며 사후 통보를 해서도 안 된다. 분기마다 자산상태를 요약한 보고서를 제출하지만 지분이나 소득 출처에 대해서는 알릴 수 없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영향 받을 가능성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미국에서 고위공직자가 되면 주변을 정리하는 이유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 조항이 엄격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해충돌이란 직무수행상 판단과 자신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 개념은 정부 고위직뿐 아니라 상·하원을 포함해 사회 전 분야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월가의 애널리스트가 특정회사에 유리한 보고서를 내고 과잉 주문하는 행위도 이 조항에 저촉돼 사법처리를 받는다. ‘정부윤리법’ ‘윤리개혁법’ ‘상원윤리규정’ ‘하원윤리규정’은 모두 이해충돌 조항을 자세히 명기하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부패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치 중 하나인 셈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해충돌에 대한 이해가 미미하다. 국회의원이 이해관계가 걸린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일이 흔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회사와 경쟁관계인 회사에 압력을 가해 이권을 챙기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시민단체들이 정부 고위직에게 보유주식을 매각하도록 촉구한 것은 이해충돌 가능성을 차단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개인적 이익을 포기하든지 직무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누구나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한 것은 실권주를 떠안았거나 유상증자 방식으로 보유한 것”이라며 시민단체의 요구를 거절했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부문 총괄사장까지 지낸 진 장관이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보유한 것은 당연하며 법적으로 한 치의 잘못도 없다. 하지만 진 장관의 설명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갔다. 문제는 그가 어떻게 주식을 갖게 됐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진 장관은 “주식 보유와 상관없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정책을 집행하겠다”고 말했지만 미국 고위직들은 비양심적이어서 그런 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이해충돌의 가능성을 모두 털어버린 장관을 요구하는 것이다.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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