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바리케이드 정치

  •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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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부근에만 가면 불편했다. 진입로에 설치돼 있던 바리케이드가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어디 가시느냐’ 꼬치꼬치 캐묻던 경호 경찰들의 위압적인 자세가 마음을 언짢게 했다. 그러던 청와대 앞길이 이달 초부터 달라졌다. 주요 진입로의 바리케이드들이 모두 철거되면서 통행이 훨씬 자유스러워졌다. ‘참여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이 청와대를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리케이드는 전쟁 투쟁 차단 경계 검문 같은 부정적 단어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을 동지와 적, 우리 편과 남의 편 등으로 나누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 상황을 떠올리던 장애물이 청와대 앞에서 사라진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바리케이드만 철거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바로 권력 핵심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드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수없이 국민통합을 외쳐 왔지만 말과 행동은 ‘내 편’ ‘네 편’을 나누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 속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분열의 리더십’을 보여 왔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얼마 전에 나온 잡초론만 해도 그렇다. 그는 일부 정치인을 ‘잡초’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지만 모든 국민을 포용하고 설득해야 할 대통령의 발언으로 적절하지 못했다. 특정 정치인을 겨냥해 다시는 정치권에 발붙이지 못하게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권의 ‘친노(親盧) 세력’이 앞장서고 있는 신당 작업도 그런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국회나 야당, 일부 언론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불필요한 전선(戰線)을 형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의 인사 스타일은 ‘바리케이드 정치’의 대표적 사례다. 자신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만 요직에 기용하는 것은 다른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아예 없애버리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의욕을 가졌다가도 그런 인사를 보고 ‘나는 안 되겠구나’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니 걱정이다.

청와대와 국회, 여와 야, 권력과 언론, 여권 내 신주류와 구주류간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상대를 배척하는 정치로는 ‘서로 사랑하는 대한민국, 화합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노 대통령의 ‘어버이날’ 편지)은 만들 수 없다. 이런 정치는 보·혁, 지역, 세대, 노사간에 쳐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더욱 견고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을 방문 중인 노 대통령은 뉴욕 교민들에게 한 연설에서 “민주화 이전까지는 우리가 편을 나눠서 치열하게 싸우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투쟁이 있었으나 이제 대화와 타협으로 의견의 대립 갈등을 풀어가는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이뤄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대통령이란 자리는 누구를 미워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이 진실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속의 바리케이드부터 걷어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바리케이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좋은 정치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 했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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