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로베르네 집'…자유!… 그리고 예술의 해방구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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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네 집/장은아 지음/221쪽 1만2000원 시공사

‘파리 리볼리가(街) 59번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꽉 차 있다. 무언가에 떠밀려 가고 있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쉽게 감염된다.

감염자는 떠밀림을 당한 부위에 심한 통증을 느끼다가, 결국 비명을 지르며, 자신을 떠밀던 대상을 공격한다.

리볼리가 59번지 바이러스의 이름은 ‘자유’다.’

'브루노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파리 지하철 샤틀레역 입구의 '예술적인' 지하철 안내표시. 사진제공 시공사

모든 것은 1999년 11월 시작되었다.

칼렉스, 가스파르, 브루노라는 무명의 세 미술가가 리볼리가 59번지의 폐쇄된 건물을 무단점거, ‘자유로운 예술 공간’을 선포했다. 이듬해 이 건물은 25명의 예술가들이 마음대로 작업하고 전시하는 활기찬 장소로 탈바꿈된다.

문이 닫혀있는 작업실은 없다. 누구나 기웃거리고 작가에게 작품의 의미와 배경을 물어볼 수 있다.

2월 법적 건물주인 프랑스 정부가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다….

2002년 여름 젊은 한국인 비디오 아티스트가 이곳을 찾았다.

묻고, 수다 떨고, 사진 찍고, 진행 중인 작품의 이면을 캐고, 한국식 떡볶이를 함께 사먹었다.

낯가림 없는 뒤섞임의 결과는 한 편의 영상다큐가 아닌 한 권의 책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제한 없는 상상력과 강요되지 않은 질서의 절묘한 혼방(混紡) 혹은 직조물.

이곳을 방문하는, 또는 책을 여는 방문자는 활짝 열린 문들과 절묘한 설치물들을 피할 수 없다.

건물 표면에부터 양철로 만든 사람의 눈 코 입이 큼직하게 붙어 있다. 알록달록한 색의 물고기들도 그물에 매달려 있다.

벽에 붙은 ‘로베르네 집’ ‘자유전자(自由電子·Electron Libre)’라는 글자는 구호가 아니라 이 집의 별칭이다. 로베르네란 과거 이 건물에 세들어 있던 가게 이름이고, ‘자유전자’란 빨리빨리 이동하는 자유인을 뜻한다.

계단을 오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계단참은 낙서와 그림으로 가득하고, 수많은 관람객들은 비좁은 계단에서 어깨를 비켜가며 다닌다.

맨 위층에는 벌거벗은 여자를 그려넣은 욕조가 있다. 여자의 딱 벌린 입이 욕조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다.

설치미술가 악투로의 방에는 모래사장과 야자수가 꾸며져 있다. 하와이언 셔츠의 인물이 한 잔 하고 가라고 말을 건넨다.

‘바 안으로 들어가 한 잔 하는 것도 작품의 일부가 되겠지….’

이 집 ‘대변인’ 로베르는 800명의 관장을 가진 ‘이고발루트 미술관’을 건물 내에 차렸다. 자기 물건을 무엇이든지 전시물로 내놓는 사람은 누구나 관장이 된다.

“이 공간을 무료로 사용한다는 건 대가를 치르고 사용하는 것보다 더 의무감이 막중하다는 걸 의미해. 예술가 비슷한 흉내만 내고자 한다면 딴 곳을 찾아야 할 거야.”

첫 점거자 중 하나인 브루노의 말처럼, 저마다 제각기의 기법, 소재, 관심사들을 갖고 있지만 작업에 대한 강철 같은 진지함만은 한결같다.

‘사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행동하지 않는다면 겁쟁이다’라고 단언하는 콜라주 작가 아니타, 자신이 칠하고 있는 노란색이 자신과 너무 다르다며 눈물을 흘리는 린다, 또는 다른 누구이든지.

“우리 얘기를 쓰고 있다고?”

“우리가 워낙 괜찮은 사람들이니까, 글이 재미없어도 세계적 명저가 될 거야.”

책의 다른 한쪽은 ‘불법점거 아틀리에의 연대기’로 채워진다.

히피들의 빈집 점거는 70년대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출발했으며 프랑스는 미술가들의 ‘점거 아틀리에’를 탄생시켰다. 이는 인근 국가들로 확산돼가고 있다. 서로 교류전도 갖는다.

“로베르네 집이 처음은 아니군….”

그렇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전시와 퍼포먼스로 살아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 집은 분명 남다르다. 프랑스 문화부가 “파리 현대미술 시설 중 방문객수 3위”라고 발표했을 정도니까.

사족.

파리 신임 시장 들라노에는 파리시가 리볼리가 59번지를 매입해 예술가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점거 행위의 죄는 명백하므로, 벌금형을 부과한다는 ‘꼬리표’와 함께.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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