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크로포트킨 자서전'…크로포트킨의 뜨거운 삶

  • 입력 2003년 5월 9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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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자서전/크로포트킨 지음 김유곤 옮김/663쪽 1만9800원 우물이있는집

1876년 6월3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니콜라이 감옥 병원.

악명높은 러시아 감옥 수형생활 2년 만에 괴혈병과 류머티즘이 악화돼 입원한 한 수형자가 번뜩이는 눈으로 병원 출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밖에서 미리 약속된 바이올린 소리가 울리고 5, 6보 떨어져 있던 감시병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는 전속력으로 병원 출구로 뛰어나가 동지들이 대기해 놓은 마차에 올랐다. 순식간에 마차는 거리를 빠져나가고….

19세기 유럽 혁명가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의 극적인 탈옥 순간이었다. 그는 이후 서유럽으로 건너가 바쿠닌 사후 유럽의 아나키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 러시아 귀족 명문가 출신으로 근위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재학 중 시종무관으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경호를 맡기도 했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 지리학에도 관심이 많아 독일의 저명한 지리학자 훔볼트의 오류를 교정하고 북극해 군도(群島)의 존재를 예측한 지성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출세 가도가 보장됐던 그는 끝내 모든 국가제도를 부정하고 차르 타도에 앞장선 아나키스트로 변신했다.

그의 변신의 기점은 근위학교 졸업 후 시베리아 오지 아무르 강변의 코사크기병대에 근무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베리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대와 인근 지역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명령과 규율보다는 상호 이해와 공공 이익의 존중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후 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에 열광적으로 참여했으며 스위스 아니키즘 노동조합인 쥐라연합과 바쿠닌을 만나며 아나키스트로 변신, 러시아로 돌아와 혁명운동에 투신했다. 32세 때 당국에 체포돼 투옥됐으나 극적으로 탈출한 후 영국 스위스 프랑스에서 아나키즘의 국제적 혁명가로 활동을 벌였다.

그는 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인간의 자발적 연대에 깊은 신뢰를 보냈고,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일체의 권력장치를 배제하려고 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창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 중앙집권화된 혁명권력을 추구한 과학적 사회주의자와는 갈등과 대립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1919년 러시아 혁명 이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아래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는 아나키스트를 철저히 탄압했고 그는 탄압을 항의하다가 결국 1921년 폐렴으로 숨을 거둔다. 이후 그의 존재와 활약상은 러시아에서 철저히 격하됐다. 그러나 그의 예언대로 기존 권력 못지않은 권위적 대체권력을 만들었던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는 70여년 뒤 결국 붕괴했다.

그는 이 자서전을 57세(1899년) 때 썼기 때문에 사망까지 22년의 생활은 원문에 들어있지 않다. 아니키즘 연구에 헌신한 국민문화연구소 이문창 회장의 해설이 크로포트킨의 말년 행적을 보충하고 있어 많은 도움을 준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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