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일수/회계검사권 국회이관 단계적으로

  • 입력 2003년 5월 7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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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가 감사원의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감사원과 협의에 들어갔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3월21일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 대표 등의 청와대 만찬회동에서 감사원 회계검사 기능의 국회 이관 문제가 거론된 뒤 4월2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에서 감사원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에 이관하겠다고 천명했다. 4월21일 노 대통령과 박관용 국회의장의 단독회동에서도 국회가 특정사안에 대한 회계감사를 할 경우 감사원의 회계검사권을 이관 받아 행사하도록 합의됐고, 이를 위해 감사원 직원의 파견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국회법과 감사원법을 손질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나라는 본시 직무감찰기관과 회계검사기관을 분리했었으나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명분으로 1963년부터 감사원으로 통합됐으니 벌써 40여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3권 분립의 정신과 국민의 대표기관성을 고려할 때 국회가 정부의 예산집행에 대한 견제기능을 실질적으로 확보해야 국회의 행정부 견제 및 우위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회계검사권이 국회로 이관돼야 한다는 주장이 그동안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재정민주주의의 정신을 살리려면 국회가 정부의 세입 세출 집행을 감독하도록 할 필요가 있고, 국회가 회계검사권을 갖게 되면 정부의 예산 낭비나 정치적 선심용 예산 편성도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계검사권의 국회 이관에는 법과 제도 차원에서 먼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현행 헌법을 손질하지 않고는 회계검사권을 국회로 완전 이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헌법 제97조는 회계검사와 직무감찰 기능을 대통령 직속의 감사원이 담당하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합의를 빌미로 당장 밀어붙이기보다 장단기적인 계획에 따라 한 단계씩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국가적인 중대사일수록 차분하게 검토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시행착오와 후유증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현행 감사원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회계검사권 국회 이관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먼저 깊이 있게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국의 제도들을 비교해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간과해서 안 될 점은 우리의 정치 현실과 의회정치의 수준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성찰이다.

민주화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낙후성과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문이 정치다. 정치 문화와 풍토의 개선 없이 국가권한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소박한 탁상공론이 되기 쉽다. 국민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정부개편이나 기관간의 권한쟁탈전에 식상해하고 있다.

회계검사 기능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담당기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다. 의회정치의 낙후성을 감안하면 현재 상황에서 회계검사권 국회 이관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다만 큰 틀을 바꾸기 전 국회의 예산안 심의 확정과 결산심사권 수행에 지금보다 더 효율적인 감사원 회계검사 연계시스템의 구축을 모색해보기 바란다.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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