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감정의 뇌' 변역계

  • 입력 2003년 4월 20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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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 컴퓨터 챔피언과의 체스 게임에서 이긴 사뮈엘 핀처는 애인과 함께 섹스를 한다. 하필 이때, 게임을 이긴 데 대한 보상으로 장 마르탱은 핀처의 뇌에 원격조정 장치를 사용해 쾌락중추에 전기 자극을 가한다. 핀처의 뇌는 지나치게 흥분하고 그는 결국 죽어버리고 만다.

마르탱이 핀처의 뇌에 자극을 가한 부위는 ‘감정의 뇌’라 부르는 ‘변연계’(가장자리계)이다. 변연계는 뇌 가운데 여러 신경 조직이 기능적으로 연결된 둥그런 원형 회로이다. 1932년 독일의 헤스는 실험쥐의 변연계를 자극하니 쥐가 공포에 질려 도망가려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변연계는 동물이나 인간의 감정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베르나르의 소설은 물론 허구이지만 그가 인용하고 있는 쥐 실험 결과는 사실이다. 1954년 올즈와 밀너는 뇌의 변연계의 한 구조물인 중격핵 부근에 전기 회로를 부착한 후 실험쥐가 그 스위치를 마음대로 켤 수 있도록 장치해 두었다.

그러자 그 쥐는 스위치를 계속 누르는 것이었다. 쥐들은 무려 1시간에 7000번이나 자극을 하였다. 중격핵은 바로 쥐의 쾌락중추였던 것이다. 쥐들은 쾌락에 빠져 식음도 전폐하고 전기 스위치를 계속 눌러댔는데 결국은 탈진해서 하나 둘씩 죽어갔다. 반면 중격핵을 양쪽 모두 잘라버리면 쾌락과는 반대되는 불안과 공격성이 증가되었다.

올즈와 밀너의 실험처럼, 혹은 베르베르의 소설처럼 만일 누군가가 뇌에 이런 장치를 해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도 쾌락을 인생의 최고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 에피쿠로스학파의 사람들이라면 변연계를 자극하라고 설교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의 목적은 쾌락이니까.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쾌락이나 공포는 유전자가 우리의 행동을 조절하도록 만든 뇌의 프로그램이다.

쾌락이란 생존 혹은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한 데 따른 상이며, 공포란 불리한 행동을 한 데 대한 벌,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 대한 경고이다. 결국 합목적적 법칙에서 벗어난 임의적 감정 조절 행위는 위험하며 올즈의 실험쥐나 베르베르 소설의 핀처처럼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늘어나는 마약 중독자, 그리고 담배, 술 중독자들은 다름아닌 임의로 자신의 변연계를 화학물질로 자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올즈와 밀너의 쥐보다 더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김종성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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