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공정위원장이었다니

  • 입력 2003년 4월 18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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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2만달러 수수 혐의에 이어 이번에는 자신이 다니는 사찰에 10억원을 시주하도록 SK그룹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시주 요청을 한 뒤 SK측이 미적거리자 독촉전화까지 했다니 그 대담함이 놀랍다. 본인은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다지만 공정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기업이 그만한 거액을 선뜻 내놓았을 리 없다.

이 전 위원장이 시주를 요청한 시점은 공정위가 SK텔레콤의 KT 주식 매입에 대해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던 때였다. SK는 이 문제가 잘 마무리되자 얼마 되지 않아 10억원을 사찰 신도의 계좌로 입금시켰다고 한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문제의 돈은 대가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칼자루를 쥔 공정위 수장의 요구를 SK측이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은 순수한 생각에서 사찰 개보수 비용을 보태달라고 했다지만 그렇더라도 잘못된 일이다. 자신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SK측이 바로 시주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 전 위원장이 재차 독촉하자 부랴부랴 돈을 입금한 것이 이런 정황을 증명한다. 사찰 시주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직무를 이용해 압력을 행사한 것은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재벌개혁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급 인사가 재벌기업에 거액의 돈을 요구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돈을 준 기업에 대해 공정성을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과 자제력을 갖고 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인물이 2년8개월간 공정위를 이끌었다니 한심스럽다.

SK가 이 돈을 어떻게 회계처리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기업이 부패한 공무원의 압력에 굴복해 회사자금을 원하지 않는 곳에 갖다 바친다면 소액주주들이 보는 피해는 누가 보상하는가. SK그룹이 내우외환을 겪으며 공중분해 위기에 처한 것은 이처럼 뒷거래로 일을 성사시키려고 한 관행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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