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최성국, 청소년-올림픽-국가대표 종횡무진

  • 입력 2003년 4월 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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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축구의 힘은 아버지 덕이죠”■

▼하키선수 출신 아버지 조언 큰힘… 그라운드선 튀지만 평소엔 ‘순둥이’▼

축구선수 최성국(20·울산 현대·사진)은 요즘 상한가다.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고 지난달 29일에는 A매치 데뷔전인 콜롬비아전을 ‘스스로 생각해도 황홀하게’ 치러냈다. 올림픽대표로 5일 코스타리카전에도 나섰다.

청소년대표, 국가대표에 올림픽대표까지. 그 뿐인가. K리그 개막전에선 프로데뷔골을 터뜨리며 팬들을 사로잡았다.

당연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 지난주 부모와 함께 찾은 울산의 한의원에서 그를 진맥한 한의사는 “스트레스가 심하냐?”고 물었다. 갑자기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와 주위의 관심. 그렇게 원했던 두 가지였지만 한꺼번에 양 손에 쥐고 보니 어린 나이에 부담스러웠을까.

○ “스캔들 생기면 안 봐”

축구팬들은 가끔 이천수(울산)와 최성국을 혼동한다. 공을 잡으면 끝을 보려는 근성, 상대에게 잘 뺏기지 않는 멋진 드리블 솜씨. 같은 유니폼에 머리 염색한 것까지 닮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실제로 이천수는 연습 때마다 최성국을 파트너로 삼아 이것저것 가르쳐주곤 한다. 2살 위인 이천수는 최성국의 고려대 1년 선배.

그러나 그라운드 밖에서 두 선수는 딴판이다. 이천수는 어디서든 끊임없이 ‘일’을 저지르며 튀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반면 최성국은 축구화를 벗는 순간 ‘순둥이’가 된다. 먼저 입을 여는 일도 드물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 싶으면 꼬박꼬박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들의 경기 때마다 만사 제치고 경기장을 찾는 아버지 최창모씨(44·버스 운전사)는 항상 아들에게 “겸손하라”고 당부한다. “운동선수의 본분을 망각한 스캔들이 생기면 다시는 안보겠다”는 통첩까지 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운동장에서는 튀어야 살지만 사회생활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것같아요.”

그렇다면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였다가 다시 은색으로 바꾼 이유는? “프로선수잖아요. 언제나 팬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아야 프로지요”.

○운동신경은 부모내림

‘부자유친’. 최성국(앞)이 ‘영원한 후견인’인 아버지 최창모씨와 함께 숙소인 울산 현대스포츠클럽하우스앞 그라운드에서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울산=최재호기자

최성국의 부모는 모두 운동선수 출신이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까지 필드하키 스틱을 잡았고 어머니(김재영·43)는 기계체조를 했다. 최성국이 자라면서 잔병치레 한번 없었던 것은 부모의 건강을 타고난 덕이다.

조기축구회 멤버였던 아버지는 막 걷기 시작한 최성국을 운동장에 데리고 다녔다. 아버지가 공을 차는 동안 최성국은 운동장 한 구석에서 자기 머리보다 큰 축구공을 굴리며 놀았다. 최성국과 축구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밥보다 축구가 더 좋았던 최성국은 부천 상지초등학교 시절 동네축구에서 ‘짱’ 소리를 들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축구부가 있는 근처 동곡초등학교에 스카우트됐다. 6학년 때였으니 다른 선수들보다 2,3년 늦은 나이.

타고난 발재간에 체계적인 훈련이 접목되자 최성국 축구는 무럭무럭 자랐다. 역곡중 2년 때는 14세이하 청소년대표에 발탁돼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최성국은 노력형.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드리블 연습을 남들보다 두 세배나 더 했다. 또 시간만 나면 아르헨티나 ‘축구 신동’ 마라도나의 경기 비디오를 틀었다. 그러고 보면 최성국이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같다. 정명고 3년때인 2000년 진주MBC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에 오른 뒤 얻은 별명이다.

○“은퇴 후 지도자는 안해”

최성국은 올해 울산에 입단면서 계약금으로 거금 3억원을 쥐자 첫 번째 소원을 실천에 옮겼다. 평생 남의 집을 전전한 부모님에게 45평짜리 빌라를 사드린 것. 가정형편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쌍둥이 누나도 올해 대학에 입학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큰 돈을 벌기위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 그러나 최성국은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일단 울산에 입단한 만큼 한 번이라도 팀을 우승시킨 뒤 자신에게 맞는 리그와 팀을 선택하겠다는 것. 1학년만 마친 대학도 졸업해야 한다.

최성국은 또 “은퇴 뒤 지도자는 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모님과 함께 무엇이든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박한 희망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멋진 제복차림의 사관생도를 꿈꾼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는 이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최성국은 누구

▽최성국은

△생년월일=1983년 2월8일

△신체조건=1m70 68㎏

△100m 주파속도=12초

△종교=기독교

△취미=당구(300점)

△포지션=스트라이커(중학교때까지 양 측면 미드필더로 뛰다 고교이후 공격수로 이동)

△출신교=동곡초-역곡중-정명고-고려대

△주요 경력=청소년대표(14세이하,16세이하,19세 이하), 올림픽대표, 부산아시아경기대표, 국가대표

울산=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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