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창]비보험 진료의 유혹

  • 입력 2003년 4월 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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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못 낳고 안과에서 결막염을 못 고친다. 비뇨기과에서는 성병 치료를 받을 수 없고 피부과에서는 무좀을 고쳐 주지 않는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다. 그러나 마냥 웃고 있을 수만 없다. 그래서 안타까움이 앞선다. 이런 ‘유머’는 이들 병원이 불임과 라식, 성기확대수술, 피부박피술 등 위험 부담이 적고 수입도 쏠쏠한 비보험 진료를 주로 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이 유머를 들려 준 사람은 자신의 아이가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한 경험을 들려줬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다 이마 부위가 찢어져 가까운 성형외과에 갔는데 다른 데로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 병원은 피부박피술 등 비보험 분야를 주로 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병원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현상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 강남지역을 보자. 요즘 불임부부가 늘면서 이 지역은 불임클리닉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자가 한 곳을 골라 전화를 걸었다.

분만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의사는 “분만을 하려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비상 대기해야 하며 수술과정에서 만약 발생할지도 모르는 부작용이나 의료사고 때문에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반면 불임 시술로 임신에 성공하면 부부로부터 평생의 은인이 되며 만약 실패해도 ‘하늘의 뜻’으로 알며 비난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보험수가가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는 것이 의사들의 설명이다. 한 외과 전문의는 “아이가 다쳐 들어왔을 때 의사 1명, 간호사 2명이 달라붙어 30분 이상 진료를 해야 겨우 2만5000원을 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보험 진료의 유혹을 느끼지 않는 의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다. 그렇다고 해도 환자를 거부하는 의사들의 책임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설령 현행 의료시스템에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아픈 환자를 외면하는 것은 의사의 본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는 비보험 진료행위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의료행위가 자선사업도 아닌데 모든 의사들에게 희생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환자들이 아프고 다쳤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병원들이 없다면 궁극적으로 환자는 물론 의사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간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우게 되는 데 따른 사회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민 건강 보호의 최일선인 1차 병원이 무너진다면 무엇보다 의사 스스로가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김상훈 사회2부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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