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상영/팩티브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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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명의 과학자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암젠(Amgen)’이란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이후 10년간 이 회사는 연구에만 매달렸다. 당연히 매출은 제로(0)였다. 첫 제품은 1989년 나온 빈혈치료제 ‘에포겐’. 이어 항암보조제 ‘뉴포겐’을 내놓았다. 단 2개의 제품으로 암젠은 짧은 기간에 세계 1위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했다. 작년에는 세계 3위 바이오기업 이뮤넥스를 110억달러(약 13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직전 시가총액은 595억달러(약 74조원), 연간 세후순익은 10억달러(약 1조2500억원)를 넘는다. 제품 2개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암젠의 역사는 신약(新藥)의 경제적 폭발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미국제약협회에 따르면 신약 1개를 개발하려면 평균 10년, 연구개발비 8억달러가 들어간다. 워낙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업체들도 공동개발을 하거나 신약 후보물질을 갖고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전략을 쓴다. 신물질을 개발해도 동물실험을 거친 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1, 2, 3차를 통과해 신약이 될 확률은 5000∼1만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단 개발에 성공하면 돌아오는 보상은 천문학적이다. 신약 1개는 최소 50억달러의 세계시장을 형성한다고 한다. 이래서 신약은 고부가가치산업의 꽃이라 불린다.

▷한국은 제약역사가 100년이라고 하지만 신약 개발은 1987년 물질특허제가 도입되면서 비로소 시작됐다. 국내 최초 신약은 1999년 SK케미칼이 개발한 항암제 ‘선플라주’로 1회 분량에 50만원이나 하던 수입 항암제를 대신해 연간 8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뒀다. 이어 속속 개발이 이어져 지금까지 8개의 신약을 선보였다. 그러나 국내용일 뿐 외국에서는 판매할 수 없다. 제약업체들이 영세해 해외에서 임상을 거쳐 판매허가를 받을 때까지 소요되는 엄청난 경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LG생명공학이 개발한 제4세대 퀴놀론계 항생제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알았던 세계적 신약을 처음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개발이 워낙 어려워 FDA에 등록된 신약을 보유한 국가는 9개국에 불과하다. 한국은 10번째 국가가 되는 셈이다. 예상대로 FDA 승인을 받으면 LG는 이 약 하나로 연간 5000억원의 매출과 800억원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90년 개발을 시작해 도중에 팀장이 암으로 사망하는 등 숱한 난관을 뚫고 12년 만에 한국 제약사에 이정표를 마련한 개발팀에 박수를 보낸다.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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