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과학도 교양이다”…非이공계 학생 대상 강좌 잇따라

  • 입력 2003년 4월 1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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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유재준 교수(왼쪽)가 두 명의 학생에게 시계를 들게 하고 빛처럼 빨리 나는 우주선 속의 시간과 지구 위 시간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김동주기자
서울대 유재준 교수(왼쪽)가 두 명의 학생에게 시계를 들게 하고 빛처럼 빨리 나는 우주선 속의 시간과 지구 위 시간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김동주기자
“타임머신의 원리는 간단해요. 빛처럼 빨리 달리면 시간이 천천히 갑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대의 한 강의실. 물리학과 유재준 교수가 10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상대성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과학자도 어려워한다는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학생들은 물리학과도, 이공계 학생도 아니었다. 법학 사회학 경제학 국문학 체육 등 비이공계 전공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대학가에서 ‘교양 과학’ 교육이 활발하다. 과거에 문학 역사 철학이 지성인의 교양이었듯이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도 기본 교양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지난해부터 비이공계 신입생들이 교양 과학을 한 과목씩 필수로 배우게 했다. 앞으로 필수 교양 과학을 두 과목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해 재미있는 강좌도 크게 늘렸다. 이곳에 개설된 교양 과학 강의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문명과 수학’ ‘양자개념과 현대과학’ ‘인간과 우주’ ‘생물의 진화’ 등 모두 15개다. 유재준 교수는 “대부분 강의가 비이공계 학생들을 위해 수식은 거의 쓰지 않고, 복잡한 이론보다는 생활에 대한 적용과 이해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강의를 통해 과학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는 글이 빼곡하다. 경제학부의 최경인씨(여·2학년)는 “지난해 ‘문명과 수학’을 들었는데 수학을 선거 음악 미술 등과 연결하는 강의가 흥미로워 올해 또 물리 강의를 신청했다”며 “학기마다 교양 과학을 한 과목씩 들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현대 과학의 의미를 이해하는 한편 물리학의 상대 속도를 경제학의 상대적 빈곤과 연관짓는 등 등 과학 이론을 통해 자기 전공을 재해석한다. 민동필 교수(물리학과)는 “교양 과학을 통해 인문계와 이공계 출신의 대화도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대학도 교양 과학 강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양대는 올해 이공계 학생들을 상대로 개설한 과학 철학 강의를 내년에는 인문계 학생의 필수 교양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물리학과 인간생명’ 등 9개 교양 과학 강의를 마련했다. 한양대 김성제 교수는 “지난해부터 5억원을 들여 새로운 교양교육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교양 과학 강좌는 물론 과학과 인문사회학을 결합한 강좌를 많이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채플(예배) 시간에도 이공계 교수가 직접 강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우주론 등 신앙과 논란이 되는 강의도 피하지 않는다. 연세대 박종세 교목실장은 “이공계 교수들의 강의를 통해 종교와 과학의 화합을 모색하는 자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등 다른 대학에도 교양 과학 강의가 늘고 있다.

과학 문화가 활성화된 선진국에서는 교양 과학이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미국은 듀크대 등 많은 대학에서 인문계 신입생들이 과학 강의를 몇 과목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시인을 위한 물리학’(하버드대) 등 다른 전공 학생들의 호기심을 끄는 맞춤 과학 강좌도 다양하다. 민동필 교수는 “인기 있는 과학 강의는 담당 교수가 10년 넘게 수업 방식과 내용을 개발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에서 과학철학 강의를 맡고 있는 이상옥 교수는 “인간복제, 핵폐기물 처리장 등 현대사회의 문제는 상당 부분 과학기술이 바탕이 된다”며 “과학과 인문사회적 소양을 함께 갖춰야 이러한 문제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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