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전쟁교육의 정서적 영향

  • 입력 2003년 3월 30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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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반전(反戰) 시위’ 현장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온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부모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사회의 가치가 상충할 때 한쪽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아이의 마음을 쇠창살로 막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교조의 ‘반전(反戰) 평화수업’도 자칫하면 ‘비교육적’으로 흐를 수 있어 우려된다.

전쟁에 대한 가르침도 뇌과학과 교육학의 성과에 따르는 것이 좋다.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면 가치보다는 정서의 함양이 중요하다. 굳이 전쟁에 대해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TV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도 피하도록 한다. 초등학생 자녀가 이번 이라크전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면 ‘맞다’ ‘틀리다’로 대화를 끊을 것이 아니라 먼저 생각을 듣고, 다른 생각도 있다는 것을 일러주면서 계속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사춘기라면 아이들의 얘기를 존중해서 듣도록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도를 묻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떠나 ‘중립적’이 돼야 한다. 또 부모는 정보를 알고는 있지만 신념을 표현하는 것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특히 9·11사태의 연장선에서 전쟁을 보는 미국의 시각과 이에 반대하는 시각, 유럽연합(EU)의 주도권을 잡고 미국 패권주의에 도전하려는 프랑스의 처지, 프랑스와 이라크의 관계 등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미국과 한국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것이 좋다.

기원전 4∼5세기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전쟁을 보았던 사상가들의 시각은 많은 점을 시사하며 아이들과 토론하기에도 좋은 소재다.

맹자에 따르면 전국시대 사상계는 양가와 묵가가 양분했다고 한다.

맹자는 양가의 ‘보스’ 양주(楊朱)에 대해 ‘정강이의 털을 하나 뽑아 세상이 평화로워진다 해도 뽑지 않을 자’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최근 양주는 생명존중 사상가로 떠올랐다. 모든 전쟁은 허망한 명분에 따라 시작되는데 양주는 이러한 명분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갈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서 양가는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묵적(墨翟)이 창시한 묵가는 극단적인 평등과 평화를 주장했다. 그들은 당시 강국이 소국을 침략할 때 ‘인간방패’로 나서곤 했다. 그러나 기원전 381년 형나라의 성(城)에서 적을 이기지 못하고 집단 자살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됐고 이후 몰락했다. 전쟁에 대해 아이들을 가르치려다 보면 대부분 자신이 얼마나 전쟁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필자도 그랬다.

이성주 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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