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혁명의 섬

  • 입력 2003년 3월 25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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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자지라 TV는 2년 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화려하게 등장했다. 탈레반 정권이 독점 취재를 허용해 준 덕에 알 자지라는 오사마 빈 라덴의 모습 등 특종 행진을 이어갔다. 전 세계 TV들은 알 자지라 화면을 받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이라크전에서도 알 자지라의 활약은 돋보인다. 최근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들의 인터뷰를 방영한 것은 미국인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일으켰다. 기자가 100명도 안 되는 소규모 아랍어 위성TV에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알 자지라’는 우리말로 ‘섬’이라는 뜻. 아랍인들은 이 방송을 ‘혁명의 섬’으로 부른다. 아랍에서 최초로 검열을 받지 않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세습왕정 체제인 아랍 국가들은 강력한 언론 통제를 편다. 뉴스 생방송은 엄두조차 못 내며 생방송이 있더라도 연예프로가 고작이다. 알 자지라는 이런 관행을 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낸다. 그래서 이름도 독립된 ‘섬’이다. 아랍인들에게 방송 내용은 가히 혁명적이어서 ‘혁명의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방송은 아랍 세계의 금기에 과감히 도전하는 등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일반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 이유다.

▷카타르 도하에 본부를 둔 이 방송의 소유주는 알타니 카타르 국왕이다. 개혁파로 알려진 그의 언론자유 정책에 따라 1996년 창설됐다. 자체 위성을 소유하고 아랍 세계에 여러 지국을 연결해 생방송을 내보낸다. 직원들은 영국 BBC출신이 70%를 차지한다. 이 방송은 후세인의 독재를 비판하고 여성 차별을 부각시키는 보도로 지국이 폐쇄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궁극적으론 아랍 세계의 입장을 대변한다. 아랍 국가들이 이 방송에 독점 취재 등 특혜를 주는 것은 ‘우리 편’이라는 인식과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이 방송은 과거 선정주의적 보도 태도로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 미군의 시신을 그대로 촬영해 내보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충격적인 방송을 내보낼지 관심거리다. 1991년 걸프전은 사상 처음 전쟁을 생중계한 미국 뉴스채널 CNN의 존재를 세계에 확실히 알렸다. CNN과 알 자지라가 대결한 아프간 전쟁의 취재는 ‘새내기’ 알 자지라의 우세로 끝났다. 이번 이라크전쟁에서도 서방세계를 대변하는 CNN과 아랍권의 알 자지라가 다시 맞붙은 형국이다. 이들의 경쟁이 서방세계와 아랍의 대결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흘러 인류가 ‘또 다른 전쟁’의 재앙을 겪게 될까 걱정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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