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상영/수수료

  • 입력 2003년 3월 19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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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따라 변화의 속도는 달랐지만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김장철이 되면 동네 아낙들은 으레 서로 품앗이를 했지만 노동력을 돈으로 지불하지는 않았다. 김치 몇 포기를 가져갔을 뿐이다. 하기야 조선시대 서당 훈장들은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 선비가 후생(後生)을 교육한 대가로 돈을 받을 수야 있겠는가. 그저 학부모들이 알아서 갖다 주는 이런저런 답례만 받았다고 한다. 광복 이후 자본주의를 본격 학습하면서도 무형의 서비스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형의 재화를 얻는 것도 아닌 터에 왜 돈을 지불해야 하느냐 하는 식이다.

▷요즘은 어디서나 간단한 서비스만 받아도 돈을 내야 한다. 이른바 수수료(手數料)라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삶이 온통 수수료로 둘러싸여 있는데 새삼 놀라게 된다. 은행, 증권, 신용카드, 자동차, 부동산 매매, 정부의 행정정보 이용에 이르기까지 수수료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요금 책정 방식도 너무 복잡해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내용조차 알 수 없다. 등록부터 폐차까지 자동차와 관련된 수수료가 15가지나 되고 정부의 행정정보 공개제도를 이용하려면 내야 하는 수수료가 50가지를 넘는다. 하도 수수료의 종류와 요금체계가 다양하다 보니 수수료에 대한 정보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트들이 생겨났을 정도다.

▷서구의 은행들이 은행 수입의 상당 부분을 각종 서비스 수수료로 충당해온 데 비해 한국의 은행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비스에 대해 돈을 받지 못했다. 수입 조금 늘리자고 손님을 잃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수수료를 도입했다. 자기앞수표 발행에 대해 수수료를 떼기 시작하자 예상대로 고객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라는 큰 시대적 변화를 겪으면서 은행의 고민은 한순간에 해결됐다. 지금은 누구도 은행에 대해 수수료를 탓하지 않는다.

▷신용카드 업체들이 수수료를 또 올린다고 해서 회원들의 불만과 원성이 높다. ‘이자 내면서 이용하는데 또 돈을 내라니’라고 생각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낙인찍힐 판이다. 간단한 사무 서비스에 대해서도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그야말로 공짜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 사이에 정이 흐르면서 보답을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줬던 과거는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정해진 값만 치르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지금이 더 편리한 측면도 있다. 현대 문명이 가져온 편리함은 어쩌면 사람 냄새가 나는 삶을 포기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편리함은 모조리 돈을 수반하기 때문에….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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