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71…1933년 6월8일(16)

  • 입력 2003년 3월 19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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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따끔따끔하다”

“더 따끔따끔하게 해 줄까”

“우후후후, 아얏!”

볼을 마구 부벼대자 미옥은 거의 파고들 것처럼 입을 귀에 바짝 갖다대고 속삭였다.

“아버지는 미옥이가 이쁘나?”

“아암, 이쁘재. 우리 착한 딸 아이가” 우철은 미옥이를 어깨에 태우고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손을 마주잡고 가게 쪽으로 걸어갔다.

가게 뒷문을 열자 둥그런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희향의 모습이 보였다. 몸이 안 남아나겠다고 이부자리에서 자라고 늘 말하는데도, 밥도 가게에서 먹고 이불까지 가게로 들고 와 뒷간하고 부엌을 드나들고 우물을 쓸 때가 아니면 가게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이 가게를 자기 위치라 정해 놓고 야영하는 군대처럼 제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할매, 미옥이 말을 걸자 희향은 물 위로 떠올라 잠시 숨을 쉬듯 입을 크게 벌리고 지친 미소로 손녀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몸을 끌 듯이 일어나, 앉아라, 하고 늘어진 목소리로 둥그런 의자를 두드렸다. 미옥이는 할매 무릎이 더 좋다, 면서 희향의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희향은 무릎에 손녀를 앉히고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자르지 않은 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주었다. 우철은 자리에서 밀려나는 듯한 느낌에 다시 밖으로 나왔다.

건넌방에 들어가자 인혜와 갓난아기가 얼굴을 감자처럼 마주하고 잠들어 있었다. 우철은 산신상 앞에 엎드려 중얼중얼 치성을 드렸다. 자비로우신 산신할매, 아무쪼록, 아무쪼록, 물거품 같은 아기가 몸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지켜주이소, 마 저희들은 어리석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자비로우신 산신 할매, 아무쪼록 이 아를 지켜주시소, 머리칼이 허얘 되도록 오래 오래 살게 해 주이소.

우철은 새하얀 배냇저고리를 두르고 마치 웃는 듯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와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땀으로 번들거리는 데다 머리칼이 몇 오라기나 들러붙어 있는 인혜의 얼굴이 우중충하고 불행하게 보였다. 기척을 느꼈는지 인혜가 눈을 떴다.

“아아, 당신”

“쉿… 아, 이름 지었다” 우철은 집게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고 숨소리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태다”

“신태…좋은 이름이네예… 신태…”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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