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최후통첩

  • 입력 2003년 3월 17일 18시 50분


코멘트
국제법상 전쟁을 시작하는 방법에는 선전포고(Declaration of War)와 최후통첩(Ultimatum)의 두 가지가 있다. 최후통첩이란 상대 국가에 최종 시한을 정해 자국의 요구사항을 통고하는 것이므로 ‘조건부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전쟁을 벌이려면 상대방에 ‘사전경고’부터 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본질상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국제사회에서 이 같은 ‘규칙’은 무시되기가 십상이다. 전시법(戰時法)을 규정한 1907년 헤이그회의 이후로도 선전포고나 최후통첩이 생략된 채 곧바로 전쟁으로 돌입한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은 전시법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독일이 폴란드(39년)와 덴마크 네덜란드(40년) 그리고 소련(41년)을 침공할 때 모두 전쟁선언 없이, 혹은 사후에 선전포고를 했을 뿐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41년)도 마찬가지. 이탈리아 역시 사전경고 없이 에티오피아(35년)와 알바니아(39년)를 공격했다. 이 같은 ‘사전경고 없는 전쟁’은 군사전략상 선제공격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계속 증가해 왔다. 1945년부터 1974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발생한 주요 전쟁 중 116개가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최후통첩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라크 전쟁이 코앞에 닥친 느낌이다. 지난 주말에는 미국 영국 스페인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전쟁 의지를 다졌고, 워싱턴에선 언제라도 전시 비상체제에 돌입할 태세다. 미국이 이달 초에 이미 공개한 최후통첩 내용이 이라크의 무조건적인 무장해제 및 사담 후세인의 축출, 그리고 체제교체였던 만큼 미국과 이라크 양측의 타협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에 따라 국제 금시세가 급등하는 등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주름살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전쟁을 시작할 때 선제공격의 효과를 포기하면서까지 사전경고를 보내는 이유는 대의명분을 얻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전쟁에도 미국은 이라크 공격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지지 결의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마지막까지 사전통고 규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반대에다 국내외에서 확산되는 반전 여론 등 미국은 지금 안팎에서 역풍을 만난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말이 나오는 판에, 이번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의 마음도 영 편치 않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