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석민/'꿈'이 아닌 '현실'을 좇는 세빗

  • 입력 2003년 3월 16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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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잠시 접어두고 현실을 생각하자. 세빗(CeBit)과 컴덱스(Comdex), 정보기술(IT) 관련 박람회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두 행사를 보면서 느끼는 감회다.

매년 가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컴덱스는 진정 꿈을 좇는 행사다. 참가하는 기업들은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최첨단의 신기술을 선보이고 관람객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즐거워한다.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오락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컴덱스 방문객들은 낮에는 전시장에서, 밤에는 베팅 테이블에서 꿈을 찾아 헤맨다.

이에 비해 매년 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세빗은 현실적이다. 기업들의 관심은 몇 년 후에 이뤄질지도 모르는 미래가 아니라 곧 시장에 내놓을 제품들이다. 행사에는 일반 관람객도 많지만 진정한 세빗의 주인은 기업과 바이어들이다. 꿈이 아닌 현실이 그들을 지배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빗이 시작됐다. 미국-이라크전쟁 조짐 때문인지 관람객들도, 이들을 맞이하는 기업들도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개최 당국에 따르면 올해 세빗에 참가한 기업은 약 6500여개로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었다. 전쟁을 앞둔 전 세계적인 불황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꿈을 보여주던 컴덱스는 최근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최 기업인 키3미디어가 파산신청까지 했다. IT 산업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게 아니냐고들 했다.

세빗 전시장은 그러나 컴덱스와 달랐다. 화려함이 없었다. 고객이 탄성을 내지를 만한 신기한 제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루 300명 정도의 바이어와 상담 약속이 잡혀 있다는 한국 기업 관계자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제품은 전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의 원가를 줄이기 위한 IT 기술도 대거 등장했다.

하노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잿더미로 변한 아픔을 딛고 세계 최대의 전시회 전문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IT 기업들은 차분하게, 그러나 힘있게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노버(독일)=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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