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토론 즐기는 대통령

  • 입력 2003년 3월 10일 19시 22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 대표들의 토론이 예고됐을 때부터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생각했다. 92년 미테랑 대통령의 TV 공개토론을 파리에서 지켜본 경험이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고인이 됐지만 미테랑 전 대통령은 뛰어난 언변으로 유명했다. 정치노선이 다른 프랑스인들조차 그의 말을 받아쓰면 군더더기 없는 명문이 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 대통령도 달변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니까 제압하려 하지말고 검사들의 말을 많이 들어달라”는 요구에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했지만 생각을 조리있고 명쾌하게 잘 표현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필수적 재능이기도 하다. 과연 미테랑 전 대통령이나 노 대통령이 어눌하더라도 공개토론에 나섰을까.

▷미테랑 전 대통령은 유럽통합 조약인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공개토론을 했다. 토론은 유서깊은 소르본대의 강당에서 3라운드로 진행됐다. 먼저, 토론 참여를 신청한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14명이 미테랑과 설전을 벌였다. 이어 저명한 언론인 3명이 나섰다. 마지막에는 조약비준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던 필립 세갱 하원의원과 미테랑이 1 대 1로 맞섰다. 당시 75세인 미테랑이 무려 3시간동안 18명의 상대와 벌인 설전은 지금 생각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프랑스처럼 뜨거운 대결을 기대하며 이번 토론을 지켜봤다.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마음은 내내 조마조마했다. 여당과 야당에서 상반되는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국민의 심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프랑스와 비교하면 토론 자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어렵게 하는 ‘부수적 요인’이 너무 많았다.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대한 찬반의견은 분명하게 가릴 수 있지만 검찰개혁과 인사문제는 2시간의 토론으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버거운 주제였다. 프랑스와는 달리 대통령과 검사들을 분리한 자리배치도 토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프랑스의 공개토론은 미테랑의 승리로 끝났다. 토론 당시 찬반여론이 백중세였으나 2주일 뒤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마스트리히트조약이 통과돼 유럽통합을 앞장서서 이끌어온 미테랑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노 대통령의 토론 결과는 어떨까. 대통령이 모처럼 어려운 시도를 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노 대통령은 어제 “상상할 수 없는 발언들도 있었지만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몰아세우기’로 젊은 검사들이 혹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하는 국민의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