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수집과 조사 및 사법처리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에 정치권력의 때가 묻으면 그만큼 굴절되거나 타락하기 쉽다. 이들이 ‘권력의 시녀’라고 불리기도 했던 오욕의 과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임기가 남아 있는 검찰총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나머지 ‘빅3’ 인선 및 청문회는 정치권력에 의한 국가기관의 권한남용과 왜곡을 막기 위한 법개정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정권을 위해 봉사해 왔던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설 땅이 없을 것이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한다.
그런데도 국정원장 인선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다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어 의아하다. 노 대통령은 ‘정치권 눈치를 보지 않고 때로 대통령 뜻도 거스를 수 있는 실무형 인사’를 찾고 있으나, 참모들이 오히려 ‘대통령의 철학과 의중을 잘 알고 대통령과 교감이 있는 중량급인사’ 기용을 건의하고 있다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과 정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같은 말 아닌가. 또한 권력에 대한 아부와 대통령과의 교감은 종이 한 장 차이 아닌가. 중량급인사라면 정치권인사를 의미하는 듯한데, 그렇다면 대통령참모들이 제시하는 국정원장 인선기준은 과거정권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당초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게 옳다.
이와 함께 어제 발표한 국세청장과 경찰청장 후보자도 청문회 과정에서 자질과 도덕성은 물론 정치적 중립성에 중대한 흠이 드러나면 임명을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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