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민단체 ‘개혁잣대’ 공정한가

  • 입력 2003년 2월 25일 21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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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칙증여와 부당내부거래 혐의로 SK그룹을 고발했던 참여연대가 비슷한 의혹이 있다며 삼성 LG 두산 한화 등 4개 그룹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토록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북한에 5억달러를 비밀리에 보낸 현대그룹을 고발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대출 받은 돈을 계열사에 지원하고 북한에 송금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 현대를 외면한 것은 시민단체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현대를 고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모든 재벌의 문제를 다 거론할 역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한 것도 적절치 않다. 불법사실이 이미 확인되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역량’ 운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확인해서 추가로 고발하겠다는 의지라도 보여줬어야 했다.

사회적인 비리와 범법행위를 고발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다. 개인이건 시민단체이건 위법사항을 알게 되면 사법당국에 고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가 되는 것은 공정성과 정치적인 중립성이다. 모든 시민단체들은 ‘김대중 정부에 의해 시민단체가 포섭당한 것이 정부를 실패하게 한 하나의 원인’이라고 밝혔던 경실련의 ‘고백’을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검찰에 구속된 이후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가 고발한 기업들이 거의 검찰의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탓이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고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가 앞으로의 정부 운영에 있어 시민단체의 참여 확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의 고발이든 개인의 고발이든 검찰의 수사 역시 공정한 잣대로 이뤄져야 한다. 특정 시민단체의 고발만을 수사대상으로 삼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고발되지는 않았더라도 유사한 사건은 없는지, 법 적용의 형평성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먼저 따져 수사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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