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리커란'…20세기 중국미술 거장의 발자취

  • 입력 2003년 2월 21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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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란, 수향소흥성(水鄕紹興城), 1962년.사진제공 시공사
리커란, 수향소흥성(水鄕紹興城), 1962년.
사진제공 시공사
◇리커란(李可染)/완칭리(萬靑力) 지음 문정희 옮김/251쪽 1만5000원 시공사

20세기 중국 화가 리커란(1907∼1989)의 작품 ‘물의 마을 소흥성(水鄕紹興城·1962년)’은 사실적인 듯하면서도 사실적이지 않다. 눈앞에 펼쳐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지 않고 원근의 차이를 과감히 축소해 도시 전체 풍경을 거의 평면으로 그리고 있다.

여기에 짙고 무거운 색조로 화면에 통일감을 주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하얗게 그렸다. 강 옆에 들어선 집들의 윤곽은 폴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의 반추상 입체를 보는 느낌을 준다. 역시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을 두루 섭렵한 대가의 작품이다. 장이머우(張藝謀)의 명성을 알지 못해도 영화 ‘붉은 수수밭(紅高粱)’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위대한 감독임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커란은 우리에게도 알려진 치바이스(齊白石)를 잇는 20세기 중국 회화의 거장. 소식(蘇軾) 조맹부(趙孟부) 동기창(董其昌) 황공망(黃公望)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代山人) 등 송(宋) 원(元) 명(明) 청(淸)대의 작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근대의 치바이스에 오면 벌써 낯설어지고 치바이스 이후로 넘어가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회화보다 친근한 문학만 해도 루쉰(魯迅)까지는 잘 알려져 있는데 린위탕(林語堂) 하면 어느 시대에 속하는지 헷갈리고, 문화혁명 기간 중 홍위병에게 테러를 당한 수치로 갑자기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노벨상을 타던 해 노벨상을 탔을 것이라는 라오서(老舍)에 이르면 갑갑해진다. 그 이후로는 몇 해 전 노벨상을 받은 가오싱젠(高行健) 정도나 알려져 있을까. ‘붉은 수수밭’도 80년대 풍속문학 작가 모옌(莫言)의 대표 작품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영화로만 알려져 있다.

리커란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이 책은 이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중국의 한 시대를 복원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양의 피카소처럼 중국권에서는 신화적 존재가 된 치바이스의 평전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긴 하나 겉핥기식의 중국 회화사 책에서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리커란의 명성은 70년대에 확고부동한 것이 됐지만, 제대로 된 평론이나 연구는 8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마저도 오류가 적지 않았다. 리커란의 제자로 홍콩대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구전과 추측으로 왜곡된 리커란의 생애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특히 200여장의 도판과 사진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마침 11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리커란·장우성’전이 열릴 예정이다. 작년 치바이스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의 황빈훙(黃賓虹) 쉬베이훙(徐悲鴻) 등의 작품 전시에 이어 열리는 것으로, 한중 양국의 수묵화 전통이 어떻게 현대화됐는지 비교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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