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신의 가면'…가면을 들춰본 '神의 얼굴'

  • 입력 2003년 2월 21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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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면(전4권)/조지프 캠벨 지음 정영목 옮김/각권 570∼870쪽, 2만∼2만5000원 까치

왜 ‘신의 가면’인가? 미국 출신의 저명한 신화연구자인 저자에 따르면, 신화의 세계는 신과 악마들의 세계이며, 신화는 이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해서 한바탕 펼치는 놀이와 축제의 마당이다. 고대인들의 가면 축제에서는 신의 존재가 가면을 통해 환영(幻影)처럼 나타나며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아득한 과거의 시간이 현재화된다. 현실의 물리적 법칙이 무시되는 신화는 ‘마치 …인 것처럼’과 같은 놀이의 법칙이 적용되는 서사공간이 된다.

신화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캠벨의 역작 ‘신의 가면(The Masks of God)’ 전 4권이 완역 출판됐다. 1999년부터 번역된 ‘원시신화’ ‘동양신화’ ‘서양신화’에 이어 이번에 제4권인 ‘창작신화’가 번역됨으로써 전권이 완역된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 그의 저서들이 국내에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그의 연구의 절정기인 50∼60대의 12년 동안 쓰인 ‘신의 가면’은 단연코 신화학 연구의 집대성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신의 가면’은 그 연구의 방대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간적으로는 원시시대에서 그리스 로마 중세를 관통해 근현대 신화와 문학에 이르며, 공간적으로는 수메르 이집트 그리스는 물론, 중세 서유럽, 북유럽, 그리고 인도, 페르시아 등 중근동과 중국, 일본의 극동지역, 서아프리카, 멕시코, 시베리아, 호주까지 광대한 지역을 아우른다.

캠벨은 그의 저술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상황과 심리학적 차원의 공통분모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신화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신화발생지대(mythogenetic zone)’가 존재하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정신’이란 점이 강조된다.

저자는 인간이 생물학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그 영적 역사에 있어서도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통일성은 하나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펼쳐져 왔고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원시신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신화 유산은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동서양의 고전문학과 20세기 문학 예술에서도 메아리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토마스 만이 ‘태고적 우물’이라고 불렀던 신화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여전히 창작과 영감의 원천으로서 고갈되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이다.

‘신의 가면’은 접근의 다양성으로 인해 단순한 신화 연구서의 차원을 넘어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캠벨의 신화학 고전은 고고학, 인류학, 사상사 및 심리학의 차원에서 인류문화의 유산을 다시 읽어 내려감으로써 메마른 역사서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캠벨의 역저 출간으로 한국에서의 신화학 연구가 초석을 굳건히 다질 수 있다면, 장차 또 다른 신화학의 거장인 조르주 뒤메질이나 오토 랭크의 역저들도 소개됨으로써 신과 신화의 가면이 한 꺼풀 더 벗겨질 것을 기대해 본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aixpr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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