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초콜릿

  • 입력 2003년 2월 1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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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작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대해 초콜릿술이 가득 든 상자 같은 곳이라고 했다. 미식가의 칭송이 자자한 그곳에선 지금도 200여년 전 유럽을 주름잡았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여인들과 전희(前戱)삼아 즐겼던 음식을 판다. 신선한 굴, ‘베네치아의 캐비아’라는 숭어알 등이 그가 최음제처럼 먹었던 요리다. 그런데 정작 카사노바를 사랑했던 여자들이 그에게 먹이고 싶어 안달했던 건 초콜릿이었다. 왜일까. ‘먹고 마시는 것의 심리학’을 쓴 미국 뉴욕테크놀로지연구소의 부소장 알렉산드리아 로그가 해답을 준다. “어떤 음식이 사랑의 묘약이라는 연구는 나와 있지 않다. 단 초콜릿만 빼놓고는.”

▷초콜릿엔 ‘사랑의 분자’라 일컬어지는 페닐에틸아민이 들어 있다. 사랑이 무르익을 때 뇌에서 활발히 분비되는 화학물질이다. 16세기 초 원산지 남미에서 유럽으로 소개된 이래 초콜릿은 “스페인 여자들이 이 검은 음료에 꼼짝 못한다”고 할 만큼 인기였다. 바로크시대에 들어선 국민을 문란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사랑물질말고도 초콜릿에 들어 있는 당분과 지방은 우리 몸 속 미각의 유전자가 이끌릴 수밖에 없는 성분이다. 입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드는 질감과 촉감도 은근히 관능적이다. 초콜릿이 사랑의 선물로 쓰이는 것도 역사적 근거가 있다.

▷일부에선 국적불명의 밸런타인데이가 ‘초콜릿 상술’로 낭비와 사치를 부추긴다고 나무란다. 사랑고백을 하려면 차라리 ‘국적 있는 명절’ 칠월칠석에 하라고 종주먹을 대기도 한다. 하지만 밸런타인데이가 허황된 서양명절이라 할 수는 없다. 1740여년 전 잔인한 로마황제 클로디우스 2세가 장정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려고 금혼령을 내리자 뜨거운 피를 지닌 밸런타인 사제는 죽음을 무릅쓰고 반기를 들었다. 사랑하라, 고백하라, 결혼하라고. 황제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잡혀간 사제는 그 안에서 운명적으로 간수의 딸을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처형장으로 가면서 그는 연인에게 쪽지를 보냈다. “당신의 밸런타인으로부터.”

▷쪽지가 연인한테 전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교황에게 이 슬프고도 감동적인 사랑 얘기가 전해졌고, 밸런타인은 연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498년 교황 겔라시우스는 2월 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 공식 지정했다는 점이다. 이런 아름다운 날 수줍은 젊은이들이 큰맘 먹고 초콜릿으로 애정을 고백하는 것이 ‘그들 집단’에서 무지막지하게 뇌물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부도덕한가. 작은 데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젊은 연인들을 예쁘게 봐줄 수는 없을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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