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래서 ‘정치검찰’ 소리 듣는다

  • 입력 2003년 2월 4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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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수사기관으로서의 본분을 외면한 검찰은 이제 ‘외풍(外風)’이나 정치권을 탓하기가 머쓱하게 됐다. 정치적 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호기를 맞고도 무엇이 걸리는지 눈을 감아버린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정치검찰’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됐다.

위법과 불법 의혹투성이인 현대상선 대북 비밀송금의 진상규명과 관련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국회에 떠넘긴 것은 검찰 스스로 손발을 묶고 정치권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또한 의혹의 핵심인물인 현대아산이사회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 등에 대한 출국금지를 해제한 것은 수사유보가 사실은 수사포기임을 시인한 것과 같다.

이 같은 검찰의 자승자박과 자기부정은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이번만은 제발 검찰이 바로 섰으면 하는 국민적 기대를 단숨에 허물어뜨렸다. 나아가 검찰의 입지를 자진해서 좁히는 나쁜 선례를 남김으로써 두고두고 검찰의 정치예속을 심화시키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정치적 의혹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이 국정조사를 하거나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겠다며 검찰에 손뗄 것을 요구한다면 무슨 논리로 거부할 것인가. 그때마다 일선검사들이 느끼는 자괴감과 국민이 겪는 혼란은 또 어쩔 것인가.

정치권의 요구가 아무리 드세도 검찰은 고유권한인 수사권을 고집했어야 했다. 검찰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문과 불신에 바탕한 특검제까지 순순히 수용하는 듯한 검찰의 모습에선 자존심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는 영영 검찰의 홀로서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 없는 검찰개혁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정조사나 특검제가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어떤 경우든 검찰수사가 선행되는 게 옳고, 검찰 수사엔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대북 비밀송금 의혹에 대한 수사유보는 검찰의 ‘적(敵)’은 검찰 자신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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