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떡값이 관행이라니

  • 입력 2003년 1월 1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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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민주당 천용택 의원이 국정원 떡값과 관련해 해괴한 말을 했다.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명절 때 판공비로 조금씩 인사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오랜 관행으로, 원칙적으로 따지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부정행위로 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서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떡값을 집사는 데 보태 쓴 민주당 김옥두 의원을 두둔하기 위한 말이라고 해도 공직자로서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 업무를 감독하고 예산 결산안을 심사하는 국회 정보위원들이 국정원과 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나. 그것은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스스로 포기한 직무유기가 아닌가. 게다가 ‘관계 유지’를 위해 돈까지 주고받았다면 뇌물수수가 분명하다. 더욱이 뇌물로 사용된 돈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니 이중 삼중의 죄를 범했다는 말이 된다.

떡값이 관행이었다고 하니 수십년간 건네진 돈을 합치면 막대한 액수가 될 것이다. 떡값만 오갔을지도 의문이다. 휴가비니 활동비니 접대비니 하는 것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욱 엄청날 게 틀림없다. 김 의원이 받은 수표와 함께 국정원 계좌에서 인출된 돈만 7억원이라고 하는 데서 국정원의 씀씀이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부정행위가 아니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천 의원의 ‘용기’가 놀랍다. 원칙적으로는 안 되는 일도 관행화되면 괜찮다는 논리 역시 기가 막힌다. 고질적인 비리나 불법행위는 눈감아 줘야 한다는 얘기인가. 우리 사회 어디에 그런 정서가 있는가. 국정원 개혁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온 사람이 온 말을 해도, 국정원장과 국회 정보위원으로 돈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있는 천 의원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말을 꺼낸 만큼 천 의원은 국정원장 재임시 ‘떡 주무르듯’ 한 기밀비의 사용 명세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 그런 뒤 국민정서에 맞는지 안 맞는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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