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인수위의 '언론 이중잣대'

  • 입력 2003년 1월 13일 18시 06분


코멘트
자신에게 적용할 수 없는 ‘잣대’를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다. 이에 비춰 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인수위의 목적은 사회주의라고 전경련 간부가 말했다’는 미국 뉴욕 타임스의 보도(10일자)에 대응하는 방식은 분명히 적절치 않았다.

12일 정순균(鄭順均) 인수위 대변인은 “문제의 발언은 직위상 개인자격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기사를 보면 명백한 의도를 갖고 발언한 것이 분명하다”며 전경련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인수위의 강경 대응은 이해할 만하다. 이런 발언이 외국투자자들에게 ‘한국 기업인은 대통령당선자가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믿는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일 인수위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인수위가 ‘두 개의 잣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당시 인수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무실을 찾아온 여러 기자에게 대기업 구조조정본부의 ‘역(逆)기능’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기업 구조조정본부가 재벌 오너 가족의 재산 대물림에 관여하고 있다. 민간기업이 알아서 할 문제지만 인수위가 구조본의 존폐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다음날 모든 조간신문에 주요 기사로 보도됐다. 그런데 인수위측은 “인수위원의 사견일 뿐 인수위 차원에서 공식 검토한 바 없다”며 잘못된 보도라고 잘라 말했다.

인수위측은 한쪽에는 개인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면서 다른 쪽은 사견에 대한 ‘언론의 무리한 보도’라는 상반되는 잣대를 들이댄 셈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인수위 관계자가 한국인 기자들과 만나 한 발언이 더 공식적인 것일까, 아니면 전경련 간부가 미국인 기자로부터 갑자기 전화를 받고 답한 것이 더 공식적인 것일까. 또한 전경련 간부의 ‘사회주의 발언’이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면 ‘구조본이 재벌 상속에 동원됐다’는 인수위 관계자의 발언도 한국을 대표하는 해당 기업의 주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인수위의 두 개의 잣대가 자칫 ‘우리의 판단이 기준’이라는 독선주의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큰일이라는 걱정을 금할 수 없다.

김승련 정치부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