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6]국가마케팅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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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아침의 나라.’

이 격변의 시대에 역동적인 이미지로도 국제사회에서 경쟁이 될까 말까 한데 한국을 가리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니,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국가 브랜드의 시대다. 그러나 ‘대한민국’ 브랜드는 아직 뚜렷한 이미지가 없거나 부정적이다. 월드컵 직전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응답자의 40.7%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자가 31%였으며,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사람은 28.3%에 불과했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은 최근 한국의 해외 이미지를 세계 29위로 평가했다. 중국(9위) 대만(22위)보다 뒤지며, 태국 멕시코 슬로베니아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과 같이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국가 이미지의 역할은 중요하다. 수출품의 부가가치로 이어져 국제수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출품은 세계시장에서 품질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다. 가전제품의 경우 일본제품보다 소매가격이 20∼30% 낮다.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각국의 노력은 가히 ‘사활을 걸었다’고 할 만하다.

한국보다 먼저 외환위기를 겪은 태국은 1997년에 태국 투자유치위원회(BOI·Board of Investment)를 조직해 세계적인 미디어그룹 타임워너와 함께 ‘회복으로 가는 길(On the Road to Recovery)’이란 모토로 대대적인 국가 이미지 캠페인을 벌였다.

일본은 1950년대에 통산성 수출진흥대책 예산의 대부분을 해외홍보비로 썼을 만큼 해외 이미지 관리에 힘을 쏟았다. 대만도 1990년부터 5년간 9억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대만 제품의 이미지 제고에 쏟아 부었다. 이때 입안한 계획의 일환으로 대만은 94년부터 정부가 인증한 제품에는 ‘대만에서 매우 잘 만든 제품(It’s very well made in Taiwan)’이라는 로고를 붙여 수출하고 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문화 프랑스’의 이미지에 ‘기술 프랑스’의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새로운 프랑스(New France)’라는 슬로건과 함께 대외 이미지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하고 있다. 스페인은 1982년 월드컵을 계기로 ‘스페인은 다릅니다(Spain Is Differen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독재국가 이미지를 민주 산업국가의 이미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82년 5380달러에서 92년 1만4160달러로 늘었고, 관광수익도 83년 62억달러에서 93년 204억달러로 증가, 세계 3대 관광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러나 월드컵의 파급효과를 국가 이미지 제고와 연계하는 후속 조치가 잘 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월드컵과 같은 국가적 행사를 이미지 제고와 연결시키려면 군사작전만큼이나 치밀한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의 이미지를 조사하는 현황 진단, 가고자 하는 이미지 목표 설정, 구체적인 전략 개발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월드컵 직후 프랑스의 대외 이미지 관리위원회와 비슷한 국가 이미지 제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정부위원 10명과 민간위원 9명으로 구성했으나 정부위원은 거의 장관들로 채워졌다. 민간위원도 정작 이미지 제고작업을 맡아야 할 기업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은 많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렇게 구성된 위원회가 과연 참신하고 생동감 있는 아이디어와 기획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우려가 많았는데 역시 그랬다. 국가 이미지 제고위원회는 출범 이래 지금까지 2차례의 회의를 가졌을 뿐이다.

한국의 국가 홍보는 정부 각 부처와 해외홍보원 재외공관 KOTRA 등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상호 공조체제가 절실하다. 새 정부는 곳곳에 분산돼 있는 국가 홍보기능을 연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푸에르토리코가 국가홍보작업을 다국적 광고업체 오길비(Ogilvy)에게 맡겨 성공을 거둔 것처럼 외국의 전문업체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 이미지 제고는 다른 사업에 따라가는 부수적인 국가 과제가 아니다. 예산과 인력을 과감히 투입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야 할 국정의 필수 과제이다.

대표집필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


▼외국인이 본 한국▼

올림픽 월드컵 세계박람회 등 국제적 이벤트를 유치하기 위해 각국은 총력전을 편다. 대회 자체의 수입도 수입이지만 이로 인한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는 돈으로 따질 수 있는 것 이상이다. 물론 실패했을 때의 타격도 크다. 나이지리아는 지난해 미스 월드대회를 통해 ‘관광 나이지리아’의 이미지를 심어보려 했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간 유혈폭동으로 대회가 무산되면서 오히려 ‘종교 분쟁국’의 이미지만 더해지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갖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KOTRA가 나가 있는 72개국의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7월의 이미지 평점은 78.4로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5월의 77.2보다 높았다(최고 선진국은 100, 최저 개발국은 50). 개발도상국들은 80 이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높게 평가했지만 선진국들은 상대적으로 낮게 보았다.

월드컵 이전에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분단국가(33%)가 1위였으나, 월드컵 이후에는 월드컵 개최국(35%) 고도 경제성장(25%)에 이어 분단국 이미지가 3위로 내려갔다. 그러나 첨단 기술국, 동북아 중심지, 문화강국 등의 이미지를 가꾸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관광공사와 야후코리아가 인터넷에서 지난해 7월 세계 네티즌 1만6678명을 상대로 6개 언어로 설문 조사한 결과, 월드컵 이후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31%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1년 이내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응답도 30%나 됐다. 월드컵 기간 중인 6월 조사에 비해 6%포인트나 높은 수치였다.한국관광공사가 월드컵 직후 해외지사를 통해 16개국 255명의 일반소비자 여행업자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경로는 대중매체(28.8%)가 1위였으며 인쇄물(20.6%) 인터넷(18.1%) 월드컵 광고(12.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민간서 배우자▼

국가 이미지 제고는 기업에서 배워야 한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저가’ ‘저품질’ ‘모방’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삼성은 외환위기 전인 96년 5월 이건희(李健熙) 회장으로부터 “C급인 삼성의 이미지를 A급 수준으로 끌어 올리라”는 지시를 받고 97년 9월 그룹 차원의 브랜드 전략을 수립했다.

가장 시급한 것이 글로벌 CI(Corporate Identity·기업이미지 통일) 확립이었다. 그 전에는 개별 상품의 판매 광고가 마케팅의 전부였다. 해외법인들은 나라별로 서로 다른 광고대행사를 활용했다. 삼성은 공통된 삼성의 이미지를 연출하기로 했다. 해외 55개 광고대행사를 ‘푸트, 콘&벨딩 월드와이드’ 한 회사로 통일했고, 전자 외의 계열사가 삼성 브랜드를 사용하려면 그룹 브랜드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연간 1억달러 규모의 그룹 공동브랜드 마케팅 기금도 조성했다.

저가 저품질의 이미지를 벗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병행됐다. 신제품을 내놓을 때 선진국시장에 먼저 내놓고 개발도상국엔 나중에 내놓는 관행을 탈피해 두 시장에 동시에 내놓음으로써 중국 동남아 러시아 등의 고부가가치 시장을 파고들었다.

스포츠 마케팅도 오랜 준비를 통해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96년 이건희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됐고, 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삼성전자를 올림픽 공식 스폰서로 끼워 넣었다. 2002년 2월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의 마케팅은 휴대전화 ‘애니콜’이 노키아나 모토로라사의 제품보다 고급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애니콜은 지난해 세계에서 3000만대 이상 팔려 1조원 이상의 순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4년 그리스 아네테 올림픽 마케팅팀을 지난해 초부터 가동하고 있다.

미국의 브랜드 조사 전문기관인 인터브랜드가 발표하는 ‘세계 100대 브랜드’에 삼성전자는 98년까지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러나 브랜드 전략 수립과 실행 후인 2000년 43위, 2001년 42위로 도약하더니 지난해에는 단숨에 34위로 뛰어 올라 브랜드 가치가 83억달러(약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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